야구가 아닌 야구 만화...'공포의 외인구단'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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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1980년대를 관통한 남자라면 만화방 구석에 쌓아놓은 그 책을 기억할 것이다.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겉으로는 야구 만화였다.
그러나 한 장만 넘기면 느낌이 달랐다. 사랑과 좌절, 집념과 비극이 야구 압축된, 한 시대의 감정 보고서였다. 처음에는 만화방용으로 출간됐다가 선풍적 인기에 힘입어 서점 베스트셀러까지 올랐다. 만화책이 서점 매대를 점령한 것 자체가 사건이었다.


오혜성의 야구 인생도 순탄하지 않다. 고교 시절 혹사로 어깨 근육이 파열되고, 투수 생명이 끝난다. 좌절과 방황 끝에 만난 것이 ‘외인구단’이다. 한쪽 팔을 잃은 타자, 혼혈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선수, 프로에서 밀려난 이들. 사회에서 한 번 밀려난 사람들의 팀이었다. 손병호 감독의 극한 훈련 아래 이들은 완전히 다른 팀으로 거듭나고, 꼴찌에서 기적 같은 연승을 만들어낸다.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여기서 끝나면 해피엔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 이현세는 가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엄지는 결국 마동탁과 결혼하고,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에서 혜성에게 부탁한다. “한 번만 져줘.” 한 번도 혜성을 이기지 못한 동탁이 엄지를 이용해 꺼낸 말이었다.
오혜성은 자신의 야구 인생이 끝나는 것을 알면서도 그 부탁을 들어준다. 손병호 감독은 충격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엄지는 정신적으로 무너진다. 오혜성은 타구에 맞아 시력을 잃는다. 외인구단은 다음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하지만, 그 자리에 오혜성은 없었다. 시작은 사랑이었고, 과정은 집념이었으며, 결말은 비극이었다.
이 만화가 1983년에 폭발적 반응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시대가 떠올려보자. 어린이날이면 여의도광장에서 ‘불량만화 화형식’이 열렸다. 남산 안기부에서는 만화가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자정 결의를 해야 했다. 만화가 사회의 악처럼 취급받던 시절이다. 공교롭게도 옛 안기부 자리에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 들어섰던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 억눌린 시대에 오혜성의 감정은 날것 그대로였다. 좋으면 끝까지 좋고, 사랑하면 끝까지 갔다. 돌려 말하지 않았다. 지금 보면 다소 과하고 오그라들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감정 표현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그때는 그 직선적 고백이 오히려 해방이었다.
타이밍도 맞았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이종도의 개막전 만루홈런, 박철순의 역투가 온 나라를 들끓게 한 직후였다. 답답한 시대, 강렬한 감정, 야구 열기. 세 가지가 합쳐지며 이 작품은 단순한 만화를 넘어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다.

영화보다 더 큰 것이 있었다. 주제곡 ‘난 너에게’다. 정수라가 부른 이 노래는 KBS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마음껏 좋아한다 말하지 못했던 시대의 감정을 정면으로 대변한 곡이었다. 만화, 영화, 음악이 하나로 묶여 성공한 최초의 사례다. 지금 말하는 ‘멀티컬처’의 원형이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이 작품 이후 만화 원작 영화는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어둠의 문화로 취급받던 만화가 한국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걸어 나왔다. 그 흐름은 오늘날 K웹툰의 세계적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누군가는 ‘난 너에게’의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이 작품이 남긴 감정의 잔향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석무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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