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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씨름 최강자’ 홍현욱 장사, 세상을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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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씨름 최강자’ 홍현욱 장사, 세상을 떠나다




[OSEN=홍윤표 선임기자] 1970년대 중반부터 10년 남짓 씨름판 최강자로 군림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홍현욱 전 한국씨름연맹 경기본부장이 16일 오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9세.

강원도 삼척 태생인 고 홍현욱 장사는 원래 유도를 했으나 어린 시절 부친을 여읜 뒤 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샅바를 잡았다. 고인은 1974년 씨름 명문인 대구 영신고로 전학, 본격적으로 씨름 재간을 배운지 불과 1년 만인 1975년 고교 2학년 때, 제29회 씨름선수권대회에서 당대 최고의 씨름꾼인 김성률 장사를 꺾고 이름을 드날리기 시작했다.

그 후 고인은 이준희(현 대한씨름협회장)와 쌍두마차로 모래판을 휩쓸었다. 고인은 1982년 씨름 프로화 이전 전국 단위 대회에서 모두 11차례(전국선수권대회 2, 대통령기 4, 회장기 2, KBS배 3번)나 우승을 했다. 고인은 민속씨름 출범 이후에는 백두장사급에서 5~7회 3연패 등 모두 4차례 정상에 오르며 씨름 중흥기의 상징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1989년 현역 은퇴 이후 고인은 한국씨름연맹 행정에도 관여, 심판위원장, 경기본부장 등을 역임, 씨름 발전에 앞장섰으나 말년에는 생활고를 겪으며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1970~80년대 씨름 최강자’ 홍현욱 장사, 세상을 떠나다




박승한 한국씨름연구소 소장(전 영남대 교수)는 “고인은 김학용, 김성률 다음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최고 반열의 장사이다. 그의 들배지기는 천하무적이었다”고 돌아보면서 “그의 삶은 단순한 승부의 기록을 넘어 효와 책임, 그리고 모래판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이어진 한편의 서사였다”고 홍현욱 장사를 기렸다.

고인과 평생 지기로,  때로는 모래판에선 치열한 경쟁자로 지냈던 이준희 대한씨름협회장은 “2개월여 전에 울산에서 만나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렇게 떠나갈 줄이야…”라며 애통해했다.

고인의 빈소는 부산 비이케이더블유 좋은삼선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8일 오전 7시, 장지는 창원시 시립상복공원이다.

사진 제공=박승한 씨름연구소 소장(사진은 생전에 고인이 씨름연구소에 기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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