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설 난무' 캡틴 이정후, 17년 울분 토했다…"난 참사의 주역, 후배들은 새로운 왕조 쓸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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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나는 참사의 주역일 수 있어도, 왕조의 주역인 (류)현진 선배님도 계셨고 후배들은 새로운 왕조를 또 써 내려갈 친구들이기에 그 기운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얼마나 한이 맺혔던 것일까. 한국 야구대표팀 주장 이정후를 비롯한 한국 선수들은 2009년 WBC 이후 무려 17년 만의 8강 진출이 확정된 순간 포효했다. 류지현 감독은 물론 선수들 대부분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라운드에서 세리머니가 끝난 뒤에도 선수들의 8강 진출 여운은 라커룸까지 이어졌다. 너도나도 크게 욕을 외치며 17년 한풀이를 제대로 했다.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고전하면서 얼마나 마음고생들을 했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국은 9일 일본 도쿄 도쿄돔에서 열린 '2026년 WBC' C조 조별리그 호주와 경기에서 7대2로 이겼다. 한국은 대만, 호주와 나란히 2승2패였다. 한국이 동률 시 순위 계산법에 따라 8강에 진출하려면 호주 타선을 2실점 이내로 막으면서 타선이 5점차 이상 승리를 이끌어야 했다. 이 어려운 것을 선수들이 해냈다.
한국 마운드의 영웅은 노경은이었다. 선발 손주영이 1이닝 1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하고, 2회에도 마운드에 올랐다가 팔꿈치에 불편감을 느껴 급히 교체됐다. 갑자기 2번째 투수로 등판한 노경은은 깔끔하게 호주 타선을 제압했다. 2이닝 28구 1안타 1삼진 무실점 완벽투를 펼쳐 8강행의 일등 공신이 됐다.
4회부터는 소형준(2이닝 1실점)-박영현(1이닝)-데인 더닝(1이닝)-김택연(⅓이닝 1실점)-조병현(1⅔이닝)이 이어 던져 승리를 이끌었다.
타선에서는 문보경의 활약이 단연 돋보였다. 문보경이 선취 홈런을 터트리면 한국이 승리하는 징크스가 이어졌다. 문보경은 체코전에서도 선취 그랜드슬램을 날려 대승을 이끌었다. 문보경은 5타수 3안타(1홈런) 4타점 맹타를 휘둘렀다. 이정후와 김도영, 안현민도 1타점씩 보태 5점차를 승리를 완성했다.
이정후는 대회를 앞두고 그동안 태극마크가 얼마나 무거웠는지 고백했다.
한국은 과거 2006년 제1회 WBC에서 4강 신화를 쓰고, 2009년 대회 준우승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승 금메달, 2015년 프리미어12 초대 대회 우승 등 계속해서 국제대회에서 성과를 냈다.
하지만 최근 국제대회에서는 참사의 연속이다. WBC는 2009년 이후 한번도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했다. 한국 야구 황금기의 주역이었던 류현진이 17년 만에 WBC 대표팀에 합류하며 의미를 더했고, KBO는 1라운드 통과 포상금 4억원을 신설하며 동기 부여를 해줬다.


이정후는 "사실 성인이 되고 국가대표로 좋은 기억이 없었다. 한번도 없었다. 내가 크면서 본 대한민국 야구는 맨날 좋은 성적을 거뒀다. 옛날 베이징 올림픽, 다음 연도 WBC를 보면서 큰 세대인데, 프리미어12에서도 당시 고등학생이었고. 그런 모습만 보고 컸는데, 내가 프로에 입단하고 맨날 국가대표 하면 참사의 주역인 것 같아서 이번에는 깨고 싶다. 깨고 다시 내가 어렸을 때 봤던 선배들의 영광을 다시 이번 대회부터 한번 다시 일으켰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정후는 호주전에서 9회를 지배하며 한국의 8강을 이끌었다. 6-2로 쫓기고 맞이한 9회초. 한국이 탈락을 면하려면 반드시 1점 이상을 내야 했다. 선두타자 김도영이 볼넷을 얻고 대주자 박해민과 교체됐다. 1사 후 이정후의 타구가 유격수 병살타 코스로 향했는데, 호주 유격수 제리드 데일이 포구를 더듬으면서 마음이 급한 나머지 2루 악송구를 저질렀다. 1사 1, 3루 절호의 기회로 연결됐고, 안현민이 중견수 희생플라이를 쳐 7-2가 됐다.
9회말에는 이정후의 슈퍼캐치가 나왔다. 1사 1루에서 릭슨 윙그로브의 타구가 우중간을 가를 뻔했는데, 우익수로 수비 위치를 옮긴 이정후가 빠르게 판단해 슬라이딩 캐치를 해내면서 호주의 반격을 완벽히 차단했다.
이정후는 9회초 추가점의 발판을 만든 장면을 설명하면서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쳤을 때 '또'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글러브 딱 받고 튀는 순간 나는 참사의 주역일 수는 있어도 왕조의 주역인 현진 선배님도 계셨고, 또 후배들은 새로운 왕조를 또 써 내려갈 수 있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그 기운이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한테 기운이 또 왔고, 끝나고 (박)해민이 형, (고)우석이, (김)혜성이 이렇게 좋지 않은 국제대회 성적을 기록했을 때 함께했던 멤버들끼리 이야기했다. 오늘 같이 이렇게 끊어서 정말 좋다고 했다"고 했다.
슈퍼캐치와 관련해서는 "우중간으로 갔는데 행운의 여신이 좀 많이 도와준 것 같다. 공 잡을 때 아무 생각도 없었다. 공이 날아왔을 때 무조건 잡아야한다는 생각으로 뛰었다. 조명에 공이 약간 들어갔는데, 역시 행분이 따른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은 대만전 패배(연장 10회 4대5 패)로 대회 4연속 탈락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일본이 8일 호주를 4대3으로 꺾으면서 한국이 8강 진출 경우의 수를 따질 기회를 줬다.
이정후는 "일본이 우리에게 한번 기회를 줬고, 또 다른 행운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초 공격을 했기 때문에 한번 더 공격을 할 수 있었다. 그것도 정말 크다고 생각한다. 정말 모든 게 우리한테 기운이 왔던 것 같다. 이기고 있는데 말 공격이면 8회까지밖에 공격을 못 하는데, 9회까지 공격을 했다. (9회 수비는) 2스트라이크가 되고 우중간으로 조금 수비 위치를 옮겨 타구를 잡을 수 있었다. 9회에 내 타구가 글러브에 안 맞았다면 사실 상상도 하기 싫은데, 결과론이니까. 해민이 형이 또 잘 달려줘서 살았고, 유격수가 실수를 해줘서 많은 게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한국 선수단은 11일 자정 하네다공항에서 전세기를 타고 미국 마이애미로 넘어가 8강 일정을 치른다. 대표팀에서는 류현진이 유일하게 미국에서 WBC를 경험한 선수다. 더는 1라운드 탈락의 부담감이 없는 만큼, 선수들은 남은 경기가 보너스라 생각하고 부담 없이 즐기면 된다.
이정후는 "일본까지 와주시고, 한국에서도 끝까지 응원해 주셨다. 많은 팬분들이 응원해 주신 결과가 여기까지 마음이 전해진 것 같다. 마이애미에서도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만난 팀들이 정말 강한 팀들이지만, 강한 팀들을 많이 만나는데 끝까지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도쿄=김민경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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