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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현중의 어머니 이전에 한국 농구 전설이었다…올림픽 은메달 리스트가 쓰는 전지적 성정아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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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현중의 어머니 이전에 한국 농구 전설이었다…올림픽 은메달 리스트가 쓰는 전지적 성정아 시점




성정아(60). 202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겐 이현중의 어머니로 유명하지만, 코트를 호령했던 1980년대를 기억하는 올드팬들에게는 여전히 한국 농구의 전설로 회자되고 있는 인물이다. 성정아의 농구 이야기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NBA를 향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아들 이현중과 함께.



[매거진] 이현중의 어머니 이전에 한국 농구 전설이었다…올림픽 은메달 리스트가 쓰는 전지적 성정아 시점




진주 수정초등학교에서 농구를 시작했던 성정아는 진주시 초등학교 대회에서 강팀 삼천포초등학교 최동권 코치의 눈에 띄어 전학을 갔고, 중학교 진학 후 신장이 180cm를 훌쩍 넘길 정도로 성장하며 ‘삼천포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청소년대표팀에 선발된 후 한 달 만에 국가대표팀까지 승선했다. 만 16세에 국가대표로 선발된 건 박찬숙에 이어 두 번째 사례였다.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을 통해 성인무대에 데뷔한 성정아는 고2 때 스카웃 파동으로 인해 잠시 대표팀에서 제외됐다. 동방생명(현 삼성생명)과의 계약이 성사 단계에 이르자,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힘을 쏟았던 태평양화학과 현대가 계약 무효를 주장하며 원치 않았던 파문이 일어난 것. 이로 인해 1983 세계여자농구선수권대회(현 월드컵) 최종명단에서 제외됐지만, 1년 후인 1984 프레올림픽을 통해 대표팀에 복귀했다.

“LA 올림픽 예선을 겸한 국제대회였는데 중국에 어마어마한 점수 차로 졌어요. 우리는 30점 정도 넣었으려나…. 저조한 성적으로 돌아왔는데 동구권 국가들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우리가 대신 LA 올림픽에 나가게 됐어요. 프레올림픽 성적이 워낙 안 좋아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았죠. ‘예산 낭비’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었다면 더 난리 났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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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선수 가운데 1명이 성정아였다. 181.6cm의 신장으로 머리가 어깨에도 못 미쳤던 진월방(208cm)을 끈질기게 괴롭힌 것은 물론, 쏠쏠한 중거리슛 능력까지 뽐내며 한국의 골밑을 지켰다. 풀타임을 소화하며 13점(야투 5/6) 5리바운드 2스틸을 기록한 것 이상의 가치가 있는 활약상이었다.

“고3이 알면 얼마나 알겠어요. 조승연 감독님이 ‘아무것도 보지 말고 진월방만 막아’라고 하셨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았어야 했죠. 혼자선 못 막죠. (박)찬숙 언니가 많이 도와준 덕분이었는데 진월방이 엄청 귀찮아 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상대가 아무리 터프하게 막는다고 해도 제가 진월방 입장이었으면 ‘쪼그만 한 게 나를 막아?’ 하면서 더 골밑을 공략했을 것 같아요. 고맙게도 골밑으로 안 들어오더라고요. 제 입장에서는 ‘왜 이쪽으로 안 움직이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장 차에 비하면 힘들지 않은 매치업이었어요.”

중국을 꺾은 한국은 금메달 결정전에서 미국에 55-85로 패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달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쾌거였고, 그렇게 그들은 전설이 됐다. 그 중심에 있었던 성정아를 ‘세계를 감동시킨 흑표범’이라 표현한 매체도 있었다.

“그렇게 착한 얼굴로 공은 어떻게 뺏는 거냐고 하는 분들도 있었어요(웃음). 저는 허슬을 즐겼거든요. 그걸 현중이가 물려받은 것 같기도 하고요. 결승에서 그렇게 큰 점수 차로 지고도 헹가래 올리는 우리를 미국 선수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본 것도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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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선수로서 성정아의 인생은 27살에 마침표를 찍었다. 20대 후반 은퇴가 일반적인 시절이었던 데다 무릎 상태도 성치 않았지만, 어린 시절부터 품은 꿈이 있었다. 바로 학업이었다. 성정아는 1992년 2월 공식적으로 은퇴했고, 선수 시절 쌓은 성적을 토대로 숙명여대 체육교육학과에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교직 이수 후에는 수원 영생고에서 체육교사로 제2의 삶을 꾸렸다. 담임을 맡은 후 우수교사상을 수상하는 등 교사로서의 삶도 모범적이었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나중에는 꼭 대학에 가야 한다’라고 세뇌를 시키셨어요(웃음). 선수 시절을 돌아보면 가장 잘하는 걸로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행복했고 후회도 없어요. 다만, 현중이를 보면서 한 가지 아쉬움이 남더라고요. 현중이는 해를 거듭할수록 꾸준히 성장했잖아요. 저는 무릎을 다친 이후에는 웨이트 트레이닝과 경기를 하는 게 전부였어요. 팀 훈련이나 개인 훈련은 거의 못 했죠. ‘부상 없이 현중이만큼 훈련에 힘을 쏟을 시간이 있었다면 조금 더 훌륭한 선수가 되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종종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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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삼성전자, 삼성생명에서 각각 선수로 뛰었지만 이윤환에겐 선뜻 다가갈 용기가 없었다. 성정아가 웨이트 트레이닝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으면 놀라서 자리를 피했을 정도의 ‘에겐남’이었다. 이윤환은 고려대-삼성전자 동료 강을준에게 도움을 청했고, 어린 시절부터 안면이 익은 사이였던 강을준의 주선으로 이들의 만남이 성사됐다.

“오래전부터 호감을 갖고 있었다는데 사실 저는 남편에 대해선 잘 몰랐어요. 내색도 안 했고요. 압구정동 카페에서 만났는데 남편은 부끄러웠는지 손에 땀을 흘리면서 고개도 못 들고 있었죠. 차분하고 배려심 깊은 게 운동선수 같지 않은 면이 있었어요. 현중이 관련 댓글 중 ‘강을준 감독님 감사합니다’라는 걸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물론 강을준 감독이 아니어도 어떻게든 인연은 닿았겠죠. 남편이 수줍어하는 면은 있어도 물러날 성격은 아니거든요.”

2000년 10월 23일, 한국 농구의 슈퍼스타 이현중은 그렇게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4살 터울의 누나(이리나)까지. 모두 농구인인 가정에서 이현중이 농구를 접한 건 우연이 아닌 운명이었지만, 사실 성정아는 아들만큼은 공부를 하길 바랐다. 또래들에 비하면 체격이 왜소했지만 공부는 꽤 잘했던 아들이었다. 자신도 부상으로 커리어에 큰 위기를 겪었던 만큼, 변수가 적은 진로와 함께 안정적인 길을 걷길 바랐다.

“누구나 자기 자식은 똑똑하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웃음), 현중이는 정말 똑똑했어요. 아빠나 누나와는 다른 길을 가길 바랐는데 7살쯤이었나…. 갑자기 그러더라고요. ‘엄마, 나는 농구선수가 될 거야. 한 번도 꿈이 바뀐 적이 없어.’ 공 가지고 노는 걸 워낙 좋아하긴 했지만 그땐 ‘얘가 얼마나 알고 꿈에 대해 얘기하는 걸까’ 싶었죠. 승부욕이 강한 건 알고 있었어요. 어릴 때 농구장에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지면 그렇게 울었죠. 친정에 가서도 목표물 넣을 수 있는 놀이를 만들어 주면 땀 뻘뻘 흘려가면서 하루 종일 붙잡고 있기도 했고요. 질리지도 않았나 봐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나. 결국 성정아는 이현중의 꿈을 지지해 주기로 했다. ‘공부도 놓지 않아야 한다’라는 전제조건과 함께. 성정아와의 약속대로 이현중은 농구선수로 입문한 후에도 학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학습지든, 숙제든 매일 어머니와 약속한 분량만큼의 학업을 채워가며 농구와 공부를 병행했다. 수학은 어린 시절부터 특히 자신 있는 전공과목이기도 했다.

수원 매산초에서 농구를 시작한 이현중은 삼일중을 거쳐 삼일고에 진학했다. 이 역시 엄마나 아빠의 계산에 없는 행보였다. 아버지 이윤환이 농구부장으로 근무 중인 학교가 바로 삼일고였기 때문이다. 원치 않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환경이었지만, “아빠가 난처할 일 없도록 내가 열심히 하면 되잖아”라는 이현중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실제 이현중은 삼일고 진학 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갔고,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되며 한국 농구의 미래로 점차 자신의 이름을 알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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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팀의 책임자이기도 했으니까요. 현중이의 미래도 걸렸지만, 팀을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보니 당황스러워했죠. 현중이에겐 얘기 안 했지만, 사실 저에겐 불가능하지 않겠냐는 얘기도 했어요. 제가 다른 걱정하지 말고 현중이만 보자고, 우리가 만들어 준 길도 아니고 스스로 캠프에서 노력해서 받은 제안이면 믿고 결정을 따라주는 게 맞지 않겠냐고 했어요. 그러면서 남편도 현중이가 원하는 쪽으로 뒷바라지를 하게 된 거죠.”

아무도 걷지 않았던 길은 예상보다 험난했다. 어릴 때부터 영어 공부도 병행했다 해도 회화에서는 벽에 부딪히는 게 다반사였던 탓에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부모님에게는 내색 한 번 안 했다.

“어릴 때부터 저에겐 힘들다는 얘기를 안 했어요. 학교에서 혼났다는 것도 다른 학부모에게 들어서 알았을 정도였죠. 그 얘기를 조심스럽게 하니까 ‘엄마, 그 얘기 어디서 들었어?’라고 되묻더라고요. 농구하면서 철이 빨리 든 것 같아요. 호주에서 영어 때문에 매일 울었다는 것도 나중에 들었죠.”

캔버라대 부속고에서도 학업과 농구를 병행하는 성실함을 유지한 이현중은 NCAA 1부 대학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유망주로 성장했다. 수많은 학교 가운데 행선지로 좁혀진 학교는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의 모교 데이비슨대, 클레이 탐슨(댈러스)의 모교 워싱턴 주립대였다.

롤모델이 탐슨이었던 만큼 당초 이현중은 워싱턴 주립대 진학을 염두에 뒀지만, 직접 두 학교를 방문한 이후 데이비슨대로 마음이 기울었다. 밥 맥킬롭 감독이 오랫동안 팀을 맡으며 체계를 잡아놓은 학교였던 데다 농구에 더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는 게 성정아의 회고다.

“워싱턴 주립대도 훌륭한 학교지만, 농구에 집중하기 힘든 분위기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시애틀에서도 한참 더 들어가야 했고, 많이 추운 지역이기도 했죠. 반면, 데이비슨대는 레전드인 맥킬롭 감독이 현중이를 보기 위해 직접 나왔고, 함께 샬럿 호네츠 경기장도 갔어요. 현중이에게 약속도 했어요. ‘많이 혼내겠지만, 그만큼 기회도 많이 주겠다’라고요. 비디오 미팅을 통해 안정된 시스템이라는 것도 파악할 수 있었죠. 현중이도 이후 데이비슨대로 진학하겠다고 마음을 잡게 됐어요.”

이현중은 데이비슨대에서도 무럭무럭 성장세를 이어갔다. 2학년 시절에는 명품 슈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180클럽을 달성했고, 2021-2022시즌에는 이은정-최진수에 이어 NCAA 토너먼트에 출전한 역대 세 번째 한국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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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 페이서스와의 워크아웃을 마친 직후에는 “약점도 있지만 저 자신을 믿습니다. 제가 이번 드래프트에 나온 선수들 가운데 최고의 슈터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자신감을 표했고, 실제 이현중 지명을 진지하게 고려 중인 팀도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엄마, 오늘도 잘했어”라는 이현중의 목소리는 성정아를 비롯한 가족들의 꿈도 부풀어 오르게 하는 동력이었다. “미네소타 감독님이 에이전트를 통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들었고, 양복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위기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 NBA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낄 무렵, 이현중과 가족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이현중은 NBA 팀과 워크아웃을 진행하던 도중 발등뼈와 인대가 손상되는 부상을 입었다. 에이전트의 전화에 잠에서 깬 성정아는 이내 이현중의 부상 소식을 접했고, 힘든 내색 한번 없었던 이현중과의 전화에서 가슴이 내려앉는 한마디까지 들었다.

“엄마, 미안해.”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울컥해요. 자다가 깨서 그 소리를 듣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죠. NBA라는 꿈을 이루고, 못 이루고는 중요한 게 아니었어요. 현중이가 얼마나 오랫동안 간절하게 품어왔던 꿈이라는 걸 알잖아요. 그 꿈이 무너졌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을지 알 것 같아서….”

목이 멨던 성정아는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이성적으로 당시 상황을 돌아봤다. “관심을 표한 팀이 많아질수록 사기도 올라갔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한 부분도 있었어요. 일정이 굉장히 빡빡했거든요. 동부와 서부는 시차가 3시간인데 이 거리를 넘나들며 워크아웃을 계속 소화하니 피로도가 쌓였을 거예요. 인정을 받고 있으니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테고요. 부상만 당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난 것 같아요.”

아직 수술이 확정되지 않은 시기였지만, 발등 부상은 NBA 관계자들이 이현중 지명을 더욱 신중하게 고심하게 만든 요인이 됐다. ‘부상이 없었다면 무조건 진출’이라 단정 지을 순 없겠지만, 당장 다가올 시즌을 건강하게 치를 수 있느냐가 관건인 아시아 선수를 선발한다는 건 분명 위험부담이 따르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NBA 드래프트에서는 2라운드가 지나도록 이름이 불리지 않았지만, 시련은 이현중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아직 NBA에 도전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자신을 채찍질했다.

“다행히 딸이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어요. 부상 당하자마자 서부에서 동부로 넘어가서 현중이를 챙겼죠. 포스트 패밀리라는 제도를 통해 현중이를 챙겨준 한국인 권사님도 계셨고요. 현중이가 덕분에 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었죠. 한국에서는 그렇게 애틋하지 않은 남매였는데 외국이니 애틋해진 것도 같더라고요(웃음). 재활 프로그램이 잘 갖춰졌다며 희망을 준 팀도 있어서 기대했던 건 사실이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한 부분도 있었어요. 반반의 심정으로 드래프트를 봤던 거죠. 낙담할 법한데 현중이는 금세 털어냈어요. 나중에 얘기하더라고요. 만약 NBA에 갔다고 해도 몸이 준비가 안 되어있어서 버티지 못했을 거라고, 기회가 많이 안 왔을 거라고 받아들였대요.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삼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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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슨도 그렇고 부상에서 돌아온 선수가 곧바로 궤도에 오른 모습을 보여주진 못하잖아요. 동작에 따라 통증이 남아있는 상태였고, G리그 마지막 자리에 들어간 선수여서 봐달라고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죠. 컨디션이 올라올 만한 시점에 시즌이 끝나더라고요.” 성정아의 회고다.

이현중도, 성정아도 기대를 품었던 무대는 서머리그였다. 드래프트에서 떨어진 선수도 충분히 NBA 관계자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다. ‘린새니티’ 열풍을 일으켰던 제레미 린, NBL에서 뛰었던 매튜 델라베도바, LA 레이커스의 주전으로 거듭난 오스틴 리브스 등 드래프트에서 낙방했으나 서머리그를 거쳐 NBA에 입성한 사례가 많았던 만큼 이현중 역시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 소속으로 맞이한 2023 서머리그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필라델피아 합류가 결정된 직후 더 강력한 러브콜을 보낸 팀도 있을 정도였지만, 기대와 달리 이현중에겐 이렇다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2경기 평균 14분 가량 출전했을 뿐이었다.

“현중이가 부족한 부분도 있겠지만, 엄마 입장에서는 공평한 기회가 주어진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도 의문이에요. 필요하다고 데려갔는데 그렇게 배제될 줄이야…. 현중이가 풀타임 시즌을 치르는 게 중요하다는 결심을 내리게 된 과정이었어요.”

성정아의 말대로 첫 서머리그에서 쓴맛을 본 이현중은 곧바로 일라와라 호크스와 계약, NBL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선수가 됐다. NBL 데뷔 초기 제한적인 역할을 맡았던 이현중은 경기를 거듭할수록 성장했다. 장점인 3점슛 능력을 꾸준히 보여준 가운데 몸싸움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임하며 내면을 살찌웠다. 사령탑이 제이콥 재코마스에서 저스틴 테이텀으로 바뀐 이후에는 핵심 전력으로 자리 잡으며 NBA를 향한 날갯짓을 이어갔다.

“풀타임 시즌에 대한 아쉬움이 커서 호주로 갔는데 초반에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았어요. 속이 타들어 가더라고요. 제가 그 정도였다면 현중이 속에서는 불이 났겠죠. 현중이의 기분이 어떨지 아니까 제 속이 타들어 갔던 거예요. 그래도 감독이 바뀐 이후에는 더 기회가 주어지고, 그만큼 현중이도 기량을 보여줄 수 있었어요. 희망을 갖고 NBL 시즌을 끝냈는데 한국에 오자마자 시차고 뭐고 체육관에 나가더라고요. 그렇게 해야 마음이 놓이나 봐요.”

NBL을 거치며 또 한 번의 스텝업을 이룬 이현중은 2024년 다시 서머리그로 향했다. 복수의 팀 가운데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택했고, 성정아의 뇌리에는 “감독님이 나를 엄청 좋아해. 패턴도 만들어 주고, 이번에는 다를 것 같아. 기회가 올 거야”라며 설렘을 내비쳤던 이현중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히 남아있다.

서머리그는 이현중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줬다. 첫 경기는 일찌감치 결장을 통보받아 마음의 준비가 된 터였지만, 기대와 달리 2, 3경기에서도 이현중을 위한 자리가 주어지지 않았던 것. 웬만해선 엄마 앞에서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았던 이현중의 멘탈도 무너진 순간이었다.

“두 번째 경기에서도 출전을 못 하게 되면서 멘탈이 나간 것 같아요. 경기장 한편에 쭈그려 앉아 울더라고요. 내 앞에서는 안 울던 아이가…. 그러곤 이제 경기장 안 나간다고, 이대로 끝낼 거라고 했죠. 그렇게 끝내서 안 좋게 낙인이 찍히면 혹시나 나중에 올 기회도 놓칠 거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달래서 농구장으로 보냈는데 또 자리가 없더라고요. 그땐 저도 못된 생각이 들었어요. 아들이 못 뛰니 팀도 지길 바랐죠. 지금 돌아보면 한심한 생각이지만….”

서머리그는 개막 직후 활약상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NBA 팀이 선수 분석에 심혈을 기울이는 기간이고, 중반 이후부터는 철수하거나 소수만 남겨두며 선수 분석의 무게를 덜어낸다. 뒤늦게 기회가 찾아왔지만, 이현중이 NBA 관계자들에게 무언가를 어필하기엔 시기적으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시점이었다. 또 한 번의 도전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4경기부터는 작은 체육관에서 치러지더라고요. 뒤늦게 기회가 주어졌지만, 멘탈이 깨졌으니 슛이 들어가질 않았죠. 연습할 때부터 그렇게 슛 안 들어가는 건 처음 봤어요. 연습 도중 유니폼도 찢을 정도였어요. 연습할 때부터 그랬으니 실전에서 슛이 들어갈 리 없었죠. 그럼에도 현중이는 죽기 살기로 했어요. 허슬 보여주고, 팔꿈치에 피가 나도 뛰고…. 그만큼 간절하게 뛰는 걸 보며 ‘현중이에겐 도대체 NBA가 뭘까?’ 싶더라고요. 현지 중계진도 ‘저렇게 절실한 선수는 처음 봅니다’라고 말했지만, NBA 관계자들에겐 대수롭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서머리그 도전도 허무하게 막을 내린 후, 이현중은 다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결과적으로 NBL 진출이 아닌 G리그에서 계속 버티는 게 NBA 진출 가능성을 높이는 길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마침 일라와라에서 2024-2025시즌 파이널 우승을 이룬 만큼 무대를 옮길 수 있는 최적의 시기도 다가왔지만, 세부 계약 내용이 걸림돌이었다. 일라와라가 2025-2026시즌 이현중에 대한 팀 옵션을 행사하기로 결정한 것. 즉, 다른 리그에서 뛰려면 바이아웃을 지불해야 했다.

에픽스포츠와 새롭게 에이전시 계약을 맺은 이현중은 결국 결단을 내렸다. 꽤 큰 바이아웃을 지불하며 새로운 무대에서 뛰는 쪽을 택했고, 2023-2024시즌 막판 잠시 뛴 경험이 있었던 B리그를 새로운 행선지로 택했다.

“물론 현중이에게 부족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이전 시즌과는 팀 분위기가 또 달랐어요. 식스맨이었던 선수가 7~9번째 선수가 된 거죠. 잘해도 일정 시간을 채우면 교체되는 상황까지 생기면서 저도 현중이도 혼란스러웠어요. 그러면서 현중이도 ‘여기는 더 이상 있을 곳이 아니다’라고 결단을 내린 것 같아요. 그래도 현중이는 예의를 갖춰서 장문의 문자까지 보내면서 다른 팀에서 뛸 수 있게 도와달라고 얘기했어요. 그래도 계약 조건을 얘기해서 결국 바이아웃을 지불했죠. 지금은 비싼 수업료였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이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현중이도 더 단단해졌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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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와의 경기에서 11개의 3점슛 가운데 1개를 넣는 데에 그쳤지만, 이현중은 이듬해에 다시 치른 A매치에서 ‘어나더 레벨’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일본, 카타르와의 평가전을 통해 3점슛, 허슬, 리바운드 가담 등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뿜어내며 한국의 1옵션 역할을 도맡았다. 농구 유학을 떠날 때부터 ‘모두의 이현중’이 되긴 했지만, 그를 향한 국내 팬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고양에서는 처음이다 보니 너무 마음이 앞섰죠. 저도 선수 출신이다 보니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해서 밸런스가 무너지는 게 보이더라고요. 현중이만큼 저도 안타까웠는데 평가전에서는 깜짝 놀랐습니다. 현중이의 내면에 저런 에너지가 있는 줄 몰랐어요. 보면서 ‘쟤 내 아들 맞아?’ 싶었으니까요. 자기가 나서서 형들 이끌고, 세리머니하고, 환호하면서 에너지 내뿜는 건 저도 처음 봤어요. 허슬은 원래 현중이가 하는 농구의 일부분이었어요. 슈터라고 얌전한 농구만 하는 아이는 아니었거든요. 호주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런 농구를 해야 했고요. 대표팀 훈련할 때도 나서서 ‘한 번 더! 한 번 더!’라고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땐 실감이 안 나더라고요.”

아시아컵 8강에서 중국에 석패한 후 이현중이 흘린 눈물도 팬들의 뇌리에 강렬히 남은 한 장면이었다. 성정아 역시 “얘는 사람 가슴 아프게 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어요(웃음). 중국을 꼭 이기고 싶다고 그렇게 얘기했으니 아쉬움도 그만큼 컸겠죠. 한편으로는 할 수 있는데 이루지 못했다는 마음, 이 선수들과 더 높은 무대를 밟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들었던 것 같아요”라고 돌아봤다.

이현중은 이후 3개월 만이었던 2025년 11월 월드컵 예선에 선발됐고, 중국과의 2연전을 준비하며 설욕을 다짐했다. 대표팀 소집 하루 전 중계방송을 본 엄마로부터 최준용, 송교창의 부상 소식을 접한 후에도 “엄마, 난 불가능이라고 생각 안 해. 내가 3점슛 20개 던지면 돼”라며 자신감을 표했고, 이를 실천으로 옮겼다. 적지에서 열린 1차전에서 월드컵 예선 역대 1경기 최다인 9개의 3점슛을 터뜨리며 한국의 기선제압에 앞장선 것. 이현중은 이어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도 중국의 수비를 역이용, 미드레인지 점퍼로 이정현과 함께 한국의 공격을 이끌며 스윕을 완성했다.

“자신감 표할 때만 해도 제가 그랬어요. ‘중국이 그렇게 슛 던지게 놔두겠니?’ 물론 잘해보자며 다독였지만, 슛 찬스가 얼마나 날까 싶었죠. 그런데 계속 넣더라고요. ‘웬일이야’ 하면서 봤습니다. 감동적인 경기였어요. 현중이뿐만 아니라 안영준, 이정현, 하윤기, 이승현 등 동료들 모두 제 역할을 너무 잘해줬죠. 사실 시스템이나 환경이 좋은 편은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우리 선수들도 집중하면 이 정도 경기력이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라고 생각해요.”

대표팀 일정을 마친 이현중은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B리그 일정에 집중하고 있다. 10~11월에 나가사키가 자체 선정하는 월간 MVP로 선정되는 등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스타로 활약하며 또 한번의 도전을 향한 준비 과정을 밟고 있다.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Everything is impossible until someone does it’이라고 새긴 타투에서 알 수 있듯 이현중의 목표는 여전히 NBA다. 모든 농구 팬의 바람이기도 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어머니이자 농구계 선배 성정아는 누구보다도 든든한 이현중의 지원군이다. 앞으로도 계속될 이현중의 도전기에 대한 한마디를 부탁하자, 성정아는 사뭇 진지한 표정과 함께 이현중 그리고 팬들을 향한 편지를 남겼다.

“사실 제 꿈은 아니지만, 현중이가 너무 간절하게 원하고 있거든요. 한 번이라도 그 무대를 밟았으면 해요. 그걸 위해서 단 하루도 마음 편하게 못 쉬면서 저렇게 운동을 하는데….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느끼고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꼭 NBA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못 이루면 평생의 한으로 남지 않을까요? 물론 농구선수로서의 길이 NBA만 있는 건 아니고, 앞으로도 훌륭하게 성장할 거란 믿음은 늘 갖고 있어요. 그래도 오랫동안 품은 꿈인 만큼 꼭 이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예전에 좋아했던 성정아 선수의 아들이니까 더 기대돼요’라는 댓글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는 선수 시절 부상 때문에 고생했고, 실업팀에서 길게 뛰지도 못했는데 좋게 기억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더불어 현중이도 응원해 주시고, 엄마 DNA를 잘 물려받았다고 말씀해주시니 황송하더라고요. 현중이가 계속 좋은 일만 겪을 순 없겠죠. 가시밭길도 걸을 테고, 슬럼프나 어려움도 겪을 텐데 다 이겨내야 하는 과정이잖아요. 지금처럼 현중이를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응원 많이 해주시길, 격려와 박수 많이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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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중 선수가 즐겨 먹는 음식은?
매운 거는 잘 못 먹어요. 제가 여느 엄마들처럼 요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어릴 때 다양한 음식을 해주진 못했어요. 그래서 현중이가 나중에 만날 배우자는 음식을 잘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웃음). 간편식은 많이 해주는 편이었는데 언젠가부터 NBA 선수들과 같은 식단을 스스로 맞춰서 차려 먹더라고요. 아보카도랑 달걀을 좋아하는데 한식은 가끔씩 김치 만들어 주는 정도? 그 외에는 크게 해주는 건 없었던 것 같아요.

탄산이나 맥주도 안 마실 것 같습니다.
어휴…. 탄산 마시면 큰일 나는 줄 알아요(웃음). 현중이라고 왜 안 마시고 싶겠어요. 참다 참다 “아, 진짜 안 마시는데 오늘 하루만 내 몸에 일탈을 허락한다”라면서 마셔요. 저도 그거 보면서 ‘특이하다’ 싶더라고요(웃음).

응원하는 팬이 많이 늘어났다는 걸 체감하시나요?
대표팀 평가전 치르기 전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댓글도 많았어요. 현중이는 댓글 보지 말라고 하지만, 아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하잖아요. 그래서 보면 마음 아픈 내용이 많았어요. 되겠냐는 시선이 많아서 댓글을 쓰다가 지운 적도 있었죠. 현중이가 안고 가야 할 부분인데 흔들리지 않고 잘 이겨내더라고요. 예전에는 속상한 댓글이 많았는데 지금은 대다수가 응원해 주고 있고 긍정적인 댓글도 많이 보면서 인기를 실감해요. ‘현중이의 진심을 조금씩 알아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감사할 따름이에요.

#사진_문복주 기자, 점프볼DB(유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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