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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km/h 던지는 덕수고 유격수 캡틴 "한국의 오타니보단 '엄준상'다운 야구 할래요" [더게이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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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km/h 던지는 덕수고 유격수 캡틴




[더게이트]

한동안 한국 아마추어 야구에서 '투타겸업 선수'는 해태나 유니콘과 같은 존재였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아무도 보지는 못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 2000년대 고교야구 지명타자 제도 도입 이후 투타 분업이 자리 잡으면서 투수는 투수만, 타자는 타자에만 전념하는 게 당연한 풍경이 된 탓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투타 모두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들이 조금씩 눈에 띄기 시작했다. 오타니 쇼헤이가 증명한 '불가능의 가능성'이 한국 야구 소년들의 가슴에도 도전의 불을 지핀 것일까. 2023년 경북고 전미르(롯데)가 고교야구를 평정했고, 지난해엔 광주일고 김성준(텍사스)이 미국 진출에 성공하며 길을 닦았다. 그리고 올해, 덕수고 엄준상이 다시 한번 야구팬들의 가슴을 두근대게 한다.



153km/h 던지는 덕수고 유격수 캡틴




1학년 데뷔전부터 '충격', 2학년엔 청룡기 평정

엄준상은 서울 자양중학교 시절부터 '야구천재'로 이름을 날렸다. 명문 덕수고에 진학한 뒤에도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쟁쟁한 선배들이 가득해 1학년이 출전 기회를 잡기 쉽지 않은 강팀에서, 신인생인 엄준상은 첫 대회부터 충격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당시 고교 최대어였던 정우주(전주고, 현 한화)를 상대로 멀티히트를 때려낸 것이다.

2학년이 된 지난해엔 청룡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라이벌 하현승이 버티는 부산고를 꺾고 덕수고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엄준상은 이 대회에서 마운드에 4경기 등판해 혼자 4승을 올렸다. 한 시즌 투수로 11경기 40.2이닝 동안 평균자책 0.66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남겼고, 타자로도 타율 0.344, 2홈런, OPS 0.933을 기록했다. '우수투수상'과 '타점상'을 한 선수가 모두 거머쥐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여기에 세계 청소년대표팀에서도 맹활약했다.

최고의 활약을 펼친 지난 시즌을 엄준상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엄준상은 멋쩍게 웃으며 "사실 야구로는 아직 만족을 못 한다"고 말했다. "물론 청소년대표팀에 다녀온 건 만족스럽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있어요. 투수 쪽은 몰라도 야수 쪽은 아쉬움이 남거든요. 1학년 때보다 2학년 때 더 성장했어야 하는데, 타구 질이나 컨택 부분에서 스스로는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투수를 병행하면서 자신의 타격이 성에 차지 않았다는 자평이다. 엄준상은 "변명 같지만, 투수를 시작하면서 확실히 타석에서 반응 속도가 조금씩 떨어지는 걸 느꼈다"면서 "올해엔 체력적으로 완벽한 몸을 만들려고 준비 중"이라며 눈을 반짝였다. 참고로 엄준상의 지난 시즌 타율은 0.344였다.

엄준상은 투수와 타자 어느 한쪽을 포기하기 아쉬운 선수다. 타자만 하기엔 투수라는 가지 않은 길이 아쉬울 것 같고, 투수만 하기엔 타자로 보여주는 모습이 눈에 밟힌다. 마운드 위 모습은 그야말로 '사기 캐릭터'에 가깝다. 최고 153km/h의 강속구를 뿌리는데 제구력까지 갖췄다. 더 놀라운 건 구사하는 구종의 다양성이다.

"저는 너클볼이랑 팜볼 빼고는 거의 다 던집니다. 어릴 때 친구들이랑 승부하면서 손장난을 많이 치다 보니 감각이 좋아진 것 같아요. 포수인 (설)재민이가 사인을 낼 때 가끔 버거워해요. 사인을 8~9개나 내야 하니까요." 프로에서 투수를 한다면, 특수 피치컴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른다. 

보통 투타겸업 선수들이 마운드에서 던지는 공은 '투수 볼'이 아닌 '야수 볼'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스피드만 빨랐지 공의 회전이나 구위가 전업 투수에 비해 떨어진다 해서 나오는 말이다. 과거 나성범, 강백호 등 아마추어 무대를 주름잡았던 투타겸업 선수들이 프로에서 투수를 포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엄준상이 던지는 공은 다르다. "코치님께서 하체를 써서 던지고, 힘을 들이지 않아야 공에 무브먼트가 생긴다고 가르쳐주셨다"는 게 엄준상의 설명이다.

리틀야구 시절 만루 상황에만 자신을 올렸던 감독의 '특훈' 덕분에 승부사 기질도 길러졌다. 위기 상황을 즐기고 클러치 상황에서 더 제 실력을 발휘하는 '싸움닭' 기질이 그때부터 몸에 배었다. 타자인데 투수도 할 줄 아는 수준이 아니라, 전국의 어떤 에이스 투수와 견줘도 밀리지 않을 만한 투수 재능을 갖춘 엄준상이다.



153km/h 던지는 덕수고 유격수 캡틴




"유격수 수비는 자부심, 강정호-최정 선배가 롤모델"

엄준상의 재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유격수 엄준상은 투수 엄준상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184cm, 85kg의 탄탄한 체격에 뛰어난 운동능력, 강한 어깨로 까다로운 타구도 손쉽게 아웃으로 만들어낸다. 타석에선 정확한 컨택 능력과 고교생답지 않은 타격 접근법이 장점이다. 지난해 리그를 평정한 KT 안현민도 고교 시절엔 컨택과 선구안이 뛰어난 타자였다. 프로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힘을 키우면서 컨택에 파워까지 겸비한 '완전체' 타자로 성장했다. 엄준상도 같은 경로를 밟을 잠재력이 충분하다.

타자로서 롤모델을 묻자 전 피츠버그 파이리츠 유격수 강정호, 그리고 SSG 랜더스의 전설 최정 이름이 나왔다. "좋아하는 스타일은 강정호 선배님이에요. 어깨도 좋고 수비도 잘하는데 거포형 유격수잖아요. 빠른 공도 타이밍을 앞에 놓고 시원하게 쳐내는 모습이 제 스타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이어 엄준상은 "최정 선배님처럼 힘 들이지 않고 홈런을 치는 능력도 배우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투수, 타자, 수비까지 못하는 게 없는 엄준상. 만약 투타 중 하나만 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엄준상은 "오타니 선수를 보면 정말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 해보니까 투수를 하는 게 타격에 영향이 없지 않더다"면서 "감독님께서 시키시면 둘 다 하겠지만, 하나만 해야 한다면 야수 쪽으로 더 노력하고 싶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153km/h 던지는 덕수고 유격수 캡틴




"지하철에서 알아보시더라고요"…엄준상의 깨달음

엄준상의 또 다른 '툴'은 그라운드 밖에서 빛난다. 엄준상은 바른 인성과 적극적인 팬 서비스로 야구팬들 사이에서 좋은 평판을 듣고 있다. 최근 사복 차림으로 지하철을 탔을 때 야구 팬인 학부모가 자신을 알아봤던 경험이 엄준상에게 깨달음을 줬다.

"깜짝 놀랐어요. 사복을 입었는데도 알아보시니까 '어디 가서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겠네' 싶었죠. 앞으로 더 인성 바른 선수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팬 서비스 해드리는 걸 즐기는 편이에요. 사인도 이미 다 준비돼 있습니다."

엄준상은 올해 라이벌 하현승(부산고), 김지우(서울고)와 함께 2027 KBO 신인드래프트 'TOP 3'로 꼽힌다. 키움, 두산, KIA 등 드래프트 상위 순번 팀들의 시선이 그에게 꽂혀 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도 이 한국의 '유격수 버전 오타니'를 주목하고 있다. 경쟁자들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낄 법도 한데, 엄준상은 활짝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현승이랑은 청소년대표팀에서 같은 방 쓰면서 정말 친해졌어요. 서로 '드래프트 때 제일 먼저 뽑히는 사람이 밥 사기'로 약속했죠. 올해엔 모두가 기량이 늘어서 다 같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엄준상은 올해 덕수고 주장을 맡는다. 정윤진 덕수고 감독이 엄준상의 성격과 책임감, 리더십을 높이 평가해 주장 역할을 맡겼다. 부담될 법도 하지만 엄준상은 "모두가 열정적으로 야구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면서 의욕을 보였다. 고3이 되는 부담감도 더 열심히 하는 원동력으로 삼을 생각이다. "'고3병'에 대한 조언도 많이 들었어요. 워낙 동기 중에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긴장을 늦추지 않고 정말 열심히 운동하고 있습니다."

투타겸업 선수들에게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오타니'다. 엄준상도 인터뷰 때마다 오타니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엄준상은 "오타니 얘기를 정말 많이 듣는데, 그분을 따라가기보다는 '엄준상'만의 야구를 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야구장에서는 누구보다 독보적이고, 야구장 밖에서는 팬들에게 사인 한 번이라도 더 해드리는 따뜻한 선수가 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투수로, 타자로, 유격수로, 주장으로. 무엇보다 한 인간으로 최고의 2026년을 꿈꾸는 엄준상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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