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박세리는 아버지를 끝까지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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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성호준 중앙일보 골프전문기자)
'골프 여제' 박세리가 중학교 때 운동하던 골프연습장은 산속에 있었다. 어느 겨울날 박세리의 아버지 박준철씨는 딸에게 훈련하고 있으라고 하고 잠깐 일을 보러 갔다. 그러다 딸을 데려오는 걸 깜빡 잊었다. 집에 들어가 딸이 없는 걸 알고 화들짝 놀란 아버지는 연습장으로 달려갔다. 그때까지 박세리는 혼자 연습하고 있었다.
"너 왜 아직도 여기 있어."
"아버지가 훈련하고 있으라고 했잖아요. 집에 가고 싶었지만 열심히 해야 최고 선수가 될 수 있잖아요."
밤이 늦어 연습장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박세리는 근처에 있는 불을 켜고 혼자 연습하고 있었던 거다.
"날이 추운데 집에 돌아가지 그랬어. 미안하다 세리야."
"딸 강하게 키우겠다"며 투견 보여주기도
박세리의 손은 추위에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박준철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딸을 안았다. 박세리의 아버지는 오지 않았다. 어린 딸을 방치했다. 그래도 박세리는 아버지를 기다렸다.
한국 골프 발전에 '골프 대디'의 열정과 헌신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박준철씨는 딸의 성공을 위해 모든 걸 다 했다. 박준철씨가 없었다면 딸이 명예의 전당에 올라가고, 스타가 돼 방송에 출연하고, 자기 이름의 재단을 갖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골프 대디의 부작용도 많다.
한국 골프 대디의 시조는 박준철씨라고 봐야 한다. 박준철씨는 유달리 강한 사람이었다. 박씨는 1998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건달이었다. 거칠게 살아왔고 그 바닥에서 잘나가는 편이었다. 하와이에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칼침을 맞아 1년간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고 말했다.
딸을 강하게 키웠다. 정신력을 길러준다면서 이따금 투견을 보여줬다. 박준철씨는 뉴욕타임스에 담력을 키우기 위해 한밤중 무덤 훈련도 시켰다고 했다. 세리는 유난히 착했고 그런 아버지의 지시를 다 따랐다.
이런 일화도 있다. "대회장에 가서 경기 시작도 하기 전에 남 보란 듯 세리에게 '이거 네 거다' 하고 우승컵을 건넸다. 주위 사람들이 '미친 놈 아니냐'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래서 '어차피 세리가 가져갈 텐데 미리 손 좀 대면 어떠냐'고 하고 '아빠 말 맞지' 하고 물었다. 세리가 잠시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떡이더라. 딸에게 내 말이 틀리면 손가락을 자르겠다고까지 했는데 지 애비 살리려고 그랬는지 결국 그 컵은 세리가 가져왔다."
우승 못 하면 아버지가 손가락을 자른다는데 어린 박세리는 얼마나 부담이 됐을까. 한 타 한 타 칠 때마다 손이 떨렸을 것이다. 아버지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 그러면서도 세리는 우승했다.
박세리가 잘됐기 때문에 박준철씨는 성공한 골프 대디였고 다른 학부모들도 박준철의 성공신화를 따라갔다. 거칠게 키워야 성공한다는 말이 나왔다. 박세리는 무덤 훈련을 부인한다. 그러나 무덤 훈련을 했든 안 했든, 박세리가 무덤 훈련으로 성공했다는 얘기가 퍼져 다른 후배 선수들은 대부분 무덤 훈련을 해야 했다.
'너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아이를 학대하고, 때론 불법도 마다하지 않는 골프 대디들의 일화는 많다. 한국에서 열린 레이디스 유러피언 투어 겸 KLPGA 투어 대회에선 한 선수가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폭행당해 외국 선수들이 항의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KLPGA 투어 선수 중에는 "아버지가 경기장에 오면 일부러 컷 탈락하겠다"고 말하는 선수도 많았다. 중·고 시절 아버지에게 심하게 폭행당하는 등의 상처가 있는 선수들이다.
골프선수 부모는 자식의 사생활도 철저히 감시한다. 한 유명 남자 선수의 어머니는 아들이 여자 선수와 사귄다는 얘기를 듣고 여자 선수의 훈련장으로 찾아가 머리채를 잡고 "내 인생을 다 바친 아이이니 접근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는 여자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골프계에서도 무서운 어머니들이 생겼다. 뒤로 물러앉은 골프 대디 대신 골프 마미들이 등장했다.
골프는 돈이 많이 든다. 한국에서 1년에 1억원은 들여야 제대로 된 골프선수를 만들 수 있다. 자식을 골프장에 태워주려면 부모 중 한 명이 전담해야 하는데 아버지가 이 일을 맡을 경우 집에 수입이 없어질 수도 있다. 딸과는 경제공동체가 된다.
JTBC골프 박원 해설위원은 "너 때문에 집도 팔고 직장도 버리면서 뒷바라지했으니 성적을 잘 내서 그걸 다 갚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잘못된 골프 대디의 전형적인 유형인데 선수에게 부담만 가중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수입 배분이 문제다. 남자 아이들은 스무 살쯤 되면 부모와 떨어진다. 여자 아이들은 쉽지 않다. "예전에 그랬듯 내가 옆에 있어야만 네가 잘할 수 있다"는 부모의 주장을 이기지 못한다.
최나연은 부모로부터 독립해 성공
최나연이 독립의 선구자다. LPGA 투어에서 뛰던 최나연은 2010년 자신이 보기를 할 때마다 풀이 죽어 걷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경기하는 게 너무나 힘들다고 했다. 부모가 떠난 이후 최나연은 연거푸 우승했다. 그때 다른 선수들도 "나연이의 예를 보니 엄마, 아빠가 곁에 없어야 성적이 잘 난다"면서 부모를 설득해 독립했다.
골프 대디들의 엑소더스가 생겼다. 요즘은 예전 같은 극성 골프 대디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박세리는 효녀였고, 아버지와 갈라서기를 못 했다.
골프계에선 성공한 골퍼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한다. 재테크를 잘해서 여유 있는 골퍼와 재테크를 못해서 미래가 불안한 골퍼다. 후자의 대표적인 사례가 박세리였다. 박세리는 선수생활을 할 때 상금만 챙기고 스폰서 후원금 등은 아버지가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아버지가 번 돈이 더 많다.
박세리는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고 스폰서인 삼성 로고를 선글라스로 가리기도 했다. 후원금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 아버지가 시켜 한 일이다. 이후 박세리는 메인스폰서를 삼성에서 CJ로 바꿨다. 당시 후원금이 연 50억원이었다는 설이 있다. 그걸 다 아버지가 관리했다.
아버지는 이런저런 사업을 벌였다. 통이 컸는데 잘된 건 거의 없다. 박세리는 최근까지도 부모는 물론 언니와 여동생, 조카까지 한집에 살았다. 사실상 여섯 식구의 가장이었다. 식구들의 씀씀이가 작지 않았다고 한다. 박세리는 평생 가족 치다꺼리를 하고 살았다.
박준철씨와 박세리는 가족으로서 의가 깊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된 새만금 등의 사업은 아버지를 고소하지 않으면 재단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올해 US여자오픈에서 톱10에 든 한국 선수는 한 명도 없었다. 박세리가 우승한 1998년 이후 US여자오픈 톱10에 한국 선수가 없는 건 처음이다. 맨발의 투혼 시대는 갔다.
그러나 박세리의 아버지는 아직도 맨발의 투혼 시대를 산다. 1998년 박준철씨는 "자신이 못 한 일을 자식을 통해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재능 있는 자식도 부모 과욕으로 잘못된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식을 위해 먼저 헌신하는 자세입니다"라고 했다. 박씨는 그 말을 지키지 못했다. 박준철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아버지니까 그렇게 나서서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릴 때 연습장에서 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린 것처럼 박세리는 성인이 되어서도 아버지를 기다렸다. 너무 오래 기다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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