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엽과 타마요, 한국농구의 현주소[이정철의 덩크슛]
작성자 정보
- 최고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3 조회
- 목록
본문
[스포츠한국 이정철 기자] 아시아쿼터 선수인 필리핀 국적의 칼 타마요(23·창원 LG)가 올 시즌 맹활약을 펼치며 LG의 창단 첫 우승 도전을 이끌고 있다. 특히 외국인 선수 아셈 마레이와의 '빅투빅 투맨게임(빅맨 두 명이서 픽앤롤과 픽앤팝 공격을 시도하는 행위)'으로 KBL을 흔드는 중이다. 골밑 포스트업도 힘들어하는 한국 빅맨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정규리그 2위팀 LG는 지난 5일부터 정규리그 우승팀 서울 SK와 2024~2025 KCC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를 치르고 있다.
당초 LG는 챔피언결정전에서 SK에게 열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올 시즌 정규리그 SK와의 상대전적에서 1승5패로 밀렸기 때문이다.
SK는 올 시즌 역대 정규리그 최소경기(46) 우승을 확정 지은 강팀이다. 리그 최고의 '에이스' 자밀 워니가 공격의 중심을 잡아주고 베테랑 가드 김선형, 정규시즌 MVP 포워드 안영준을 보유한 팀이다.
특히 SK는 상대 가드를 향한 압박수비에 능하다. 상대팀 가드가 빅맨과 투맨게임을 펼치면 순간적으로 빅맨 수비수와 가드 수비수가 압박을 펼친다. 이를 통해 공을 뺏어내거나 턴오버를 유발한 뒤 속공으로 점수를 올린다. LG와의 정규리그에서도 포인트가드 양준석을 압박하면서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그런데 챔피언결정전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렀다. 파워포워드이자 빅맨 역할을 하는 타마요가 투맨게임 드리블러로 나선 뒤 모든 게 바뀌었다. 2m2cm 신장의 타마요는 수비시 골밑에서 상대 빅맨을 막고 공격시엔 여러가지 기술을 선보이는 선수다.
뛰어난 드리블을 갖춘 타마요는 세트포지션에서 돌파로 상대 수비를 헤집어 놓을 줄 안다. 원맨 속공도 가능하다. 여기에 슈팅과 패스까지 훌륭하다. 이를 앞세워 정규리그부터 종증 마레이와 '빅투빅 투맨게임'을 펼쳤다. 볼 핸들러인 타마요가 마레이의 스크린을 받고 드리블로 골밑에 접근한뒤 득점을 올리거나 마레이에게 양질의 패스를 건넸다.
SK는 정규리그에서 타마요의 공격을 잘 제어했다. 하지만 타마요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더 발전했고 챔피언결정전에서 오세근, 최부경의 느린 발을 공략하며 1차전 24점, 2차전 27점, 3차전 18점을 넣었다. LG는 타마요의 활약을 앞세워 4차전까지 3승1패로 앞서며 창단 첫 우승까지 한 걸음만을 남겨뒀다.
타마요의 공격력은 KBL 국내 빅맨들에게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KBL 국내 정상급 빅맨들은 공격력을 잃은 지 오래다. 가드들의 스크리너로 전락했다. 공격은 외국인 선수에게 맡기고 높이를 활용한 수비에 전념한다. 경기에 돌입하면 국내 빅맨들의 포스트업 공격이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는다.
물론 최근 대다수의 국내 빅맨들은 과거보다 슈팅거리를 늘려 3점슛이나 미드레인지 점퍼를 장착했다. 그러나 높은 슈팅 정확도를 갖춘 국내 빅맨은 전무한 실정이다. 슈팅 거리만 늘었다. 공격에서 국내 빅맨의 역할은 3점 라인 바깥에 머무르면서 외국인 선수의 공격 공간을 확보하는 데 그치고 있다. 타마요가 슈팅, 드리블, 돌파, 포스트업 능력을 다 갖춘 채 '빅투빅 투맨게임'을 펼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사실 한국에도 타마요같이 볼 핸들링 능력을 갖춘 파워포워드가 있었다. 90년대 중반 농구대잔치부터 프로초창기까지 한국 농구를 주름잡았던 현주엽이다.
고려대학교 재학 당시 195cm 신장의 현주엽은 뛰어난 운동 능력과 힘으로 서장훈을 막았다. 공격에서는 유려한 드리블과 슈팅, 패스를 앞세워 팀의 '1옵션' 역할을 했다.
현주엽의 공격력은 프로에서도 빛났다. 타마요처럼 외국인 빅맨과 투맨게임도 펼치며 수많은 어시스트를 올렸다. 이로 인해 '포인트포워드(포인트가드+포워드)'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더불어 45도 각도에서 포스트업을 시도하다가 던지는 페이드어웨이 뱅크슛은 현주엽의 전매특허였다.
그러나 이제 한국농구에서 현주엽처럼 빅맨 수비수로 활약하면서도 공격에서 투맨게임을 펼칠 수 있는 선수가 없다. 아시아의 농구강국이자, 한국의 라이벌인 필리핀에서는 타마요 외에도 수많은 빅맨들이 공격 능력을 갖췄다. 한국농구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지점이다.
최근 KBL 경기 양상은 가드와 빅맨의 투맨게임으로 압축됐다. 스몰포워드는 패스를 받아먹는 스팟업 슈터 겸 수비수, 국내 빅맨은 리바운드와 수비에만 집중한다. 1990년대 중반 현주엽을 탄생시킨 한국농구가 2025년 타마요를 경이적인 눈으로 바라본다. 한국농구는 계속 뒷걸음질 치고 있다.
-이정철의 덩크슛 : 최근 뜨거운 주제에 대해 기자의 시각이 담긴 칼럼. 덩크슛처럼 뜨겁고 시원하게 매력적인 주장을 펼치는 칼럼입니다.
스포츠한국 이정철 기자 [email protected]
관련자료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