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최악의 계약'이라고 했나…'시범경기 타율 0.455' 이정후, '최고의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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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츠뉴스 유준상 기자) 기대만큼 우려도 컸다. 하지만 '바람의 손자' 이정후(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의문부호를 지우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시범경기 4경기 연속 안타로 상승세를 이어나갔다.
이정후는 4일(이하 한국시간) 애리조나주 굿이어 볼파크에서 열린 2024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시범경기 클리블랜드 가디언스와의 원정경기에 1번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전, 2타수 1안타 1타점 1득점 1볼넷으로 활약했다.
지난달 28일 시애틀 매리너스전을 시작으로 시범경기 일정을 소화 중인 이정후는 3월 1일 애리조나전 3타수 2안타(1홈런) 1타점, 2일 텍사스 레인저스전 3타수 1안타에 이어 이날까지 4경기 연속 안타 행진을 이어갔다. 시범경기 타율은 0.455로 상승했고, OPS(출루율+장타율)는 1.318이다.
▲첫 타석부터 기대 부응한 이정후, 완벽하게 임무 수행
이날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중견수)-마르코 루시아노(지명타자)-라몬테 웨이드 주니어(1루수)-J.D. 데이비스(3루수)-루이스 마토스(우익수)-블레이크 사볼(좌익수)-조이 바트(포수)-닉 아메드(유격수)-도노반 월튼(2루수) 순으로 라인업을 구성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샌프란시스코로 이적한 '강속구 투수' 조던 힉스가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클리블랜드는 스티븐 콴(좌익수)-안드레스 히메네스(2루수)-호세 라미레즈(3루수)-조시 네일러(1루수)-라몬 로리아노(우익수)-가브리엘 아리아스(유격수)-에스테반 플로리얼(중견수)-데이비드 프라이(포수)-호세 테나(지명타자)로 라인업을 꾸렸다. 선발투수는 태너 비비.
이정후는 첫 타석부터 침착했다. 1회초 비비와의 승부에서 볼넷을 얻어내면서 1루를 밟았다. 후속타자 루시아노가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1사 1루에서 타석에 타선 웨이드 주니어가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투런 아치를 그리면서 이정후도 홈을 밟았다.
2회초 두 번째 타석에서 2사 1·3루의 기회를 맞이한 이정후는 헌터 스탠리의 초구를 건드렸지만, 1루수 땅볼을 치면서 타점 획득에 실패했다. 하지만 4회초 세 번째 타석에서 아쉬움을 달랬다. 2-2로 맞선 2사 1·2루에서 우전 안타를 쳤고, 그 사이 2루주자 사볼이 홈을 밟으면서 팀에 3-2 리드를 안겼다.
이정후는 6회초 대타 타일러 피츠제럴드와 교체되면서 자신의 임무를 마쳤고, 팀은 9회초 이스마엘 먼구이아의 솔로포에 힘입어 6-5 1점 차 승리를 거뒀다.
▲샌프란시스코의 과감한 투자, 부정적인 전망도 많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2017년 1차지명으로 넥센(현 키움) 히어로즈에 입단한 이정후는 7년간 꾸준한 활약을 선보이며 눈도장을 찍었다. 지난해까지 매년 3할 이상의 고타율을 기록했고, 2022년에는 데뷔 첫 20홈런을 쏘아 올리며 장타력까지 뽐냈다. 데뷔 첫해 출전한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을 시작으로 프리미어12,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이정후는 2022년 12월 키움 구단에 2023시즌 종료 후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경쟁입찰)을 통해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고, 내부 논의를 거친 키움은 지난해 1월 초 선수의 의지와 뜻을 존중하고 응원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구단 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돕고 지원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정후의 해외 무대 도전 선언에 미국과 일본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해 WBC에서 맹활약을 펼친 이정후는 정규시즌까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듯했지만, 후반기 돌입 이후 예상치 못한 부상을 당했다. 7월 2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에 3번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전해 경기를 뛰던 이정후는 8회말 수비 과정에서 몸 상태에 이상을 느꼈고, 곧바로 구단 트레이너가 외야로 뛰어갔다. 혼자서 걷는 게 쉽지 않았던 이정후는 부축을 받으면서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검진 결과는 왼쪽 발목 신전지대(발목 힘줄을 감싸는 막) 손상 진단.
이정후는 부상 이후 두 달 넘게 경기에 나서지 못했으나 스카우트들의 관심은 여전했다. KBO리그, 메이저리그 시즌 종료와 함께 연일 이정후의 행보를 집중하는 소식들이 쏟아졌고, 여러 팀이 영입전에 뛰어들 것으로 보였다.
이정후는 지난해 12월 포스팅 개시 이후 2주도 채 지나지 않아 샌프란시스코와 6년 총액 1억 1300만 달러(약 1504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이정후의 빅리그 도전을 집중적으로 다룬 미국 현지 언론은 이정후가 6000만 달러~8000만 달러 사이의 금액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이정후 영입전에서 가장 적극적이었던 샌프란시스코는 과감하게 지갑을 열었다.
월드시리즈 8회 우승(1905, 1921, 1922, 1933, 1954, 2010, 2012, 2014년)에 빛나는 샌프란시스코이지만, 2022년과 2023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아쉬움을 삼켰다. 결국 지난해 9월 말 게이브 캐플러 샌프란시스코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됐고, 2022~2023시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감독으로 활동했던 멜빈 감독이 올 시즌부터 샌프란시스코를 이끌게 됐다.
반등을 꿈꾼 샌프란시스코는 일찌감치 공격력 및 수비력 강화를 위해 외야수 영입을 계획했고, 오랜 시간 동안 이정후를 면밀히 관찰했다. 피트 푸틸라 샌프란시스코 단장은 지난해 10월 직접 한국을 방문해 이정후의 2023시즌 마지막 홈경기를 지켜보기도 했다. 종합해보면, 샌프란시스코의 '진심'에 이정후의 마음이 움직인 셈이다.
대체로 긍정적인 전망이 많았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야구 통계 전문 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의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을 바탕으로 각 포지션별로 보강에 성공한 팀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외야수 부문에 샌프란시스코를 포함시켰다. 지난해 28위에 머물렀던 샌프란시스코의 외야수 WAR 순위가 올해 11위까지 뛰어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MLB.com은 "샌프란시스코는 오프시즌에 기대했던 것만큼 수확을 거두진 못했지만, '바람의 손자'라고 불리는 한국인 중견수 이정후를 영입했다. 인상적인 콘택트 능력으로 알려진 그는 25세 시즌에 출루율 0.354, wRC+(조정 득점 생산력) 116을 기록하며 삼진 및 볼넷 비율이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서 그가 성공적으로 MLB에 안착할 것"이라며 "이정후의 예상 WAR은 3.2로 지난해 샌프란시스코가 우익수 마이크 야스트렘스키, 마토스 등 10명의 선수를 기용하며 나타냈던 0.4보다 수치가 크게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부정적인 전망도 적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구단 소식을 위주로 다루는 미국 팬 사이트 '어라운드 더 포그혼'은 지난해 12월 말 인기 야구 팟캐스트 '토킹 베이스볼'의 방송 내용을 언급했다. 토킹 베이스볼의 진행자들은 샌프란시스코가 빅리그 경험이 없는 이정후에게 너무 많은 금액을 지불했으며, KBO리그의 수준이 빅리그보다 낮기 때문에 이정후에게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 진행자는 트리플A에서 활약한 선수를 더 적은 비용으로 홍보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방송 내용을 전한 '어라운드 더 포그혼'은 "이정후의 영입은 샌프란시스코의 오프시즌 가장 큰 이적이고, 6년 총액 1억 1300만 달러의 계약은 역대 최고 대우 중 하나"라며 "이정후를 중견수로 활용할 계획인 샌프란시스코는 콘택트와 스피드를 바탕으로 이정후가 리드오프로서 활약하길 바라고 있다. 이번 계약에는 많은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매체는 "팟캐스트 진행자들은 타당하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제시하긴 했지만,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하더라도 샌프란시스코에게 이정후를 영입하는 게 필요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이정후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게도 적응 기간이 있었다. 이정후가 메이저리그에서 한 경기도 뛰지 않았는데 영입에 대해 우려스럽다고 추측하는 건 근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미국 스포츠매체 '디애슬레틱'은 지난달 22일 2024시즌 개막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전현직 구단 임원, 감독, 코치, 스카우트 등 총 31명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설문조사를 진행해 비시즌을 평가했는데 이정후가 FA 계약 부문에서 7표를 받으면서 팀 동료인 조던 힉스와 함께 공동 2위에 올랐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루카스 지올리토가 8명으로 가장 많은 표를 받았고, 4위는 신시내티 레즈의 프랭키 몬타스로 4명의 표를 받았다.
이정후가 왜 최악으로 꼽혔는지 선택한 이들의 설명은 없지만, 디애슬레틱은 이 항목의 선정 기준이 선수의 기량보다는 계약 조건이라고 얘기했다.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시점에서, 이정후에 대해 다소 평가절하한 것이다.
지난달 1일 출국을 앞두고 국내 취재진을 만난 이정후는 미국 현지에서 다양한 예상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 "좋은 예측 기사가 나오고 있는 건 사실 별로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건 적응이라고 생각해서 적응을 잘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을 한다. 적응을 잘해서 꼭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외부의 평가를 신경 쓰지 않고 묵묵하게 목표를 향해 달려가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정후는 순조롭게 적응 중, 시즌 준비도 이상 무
많은 관심 속에서 2024시즌 준비에 돌입한 이정후는 순조롭게 스프링캠프를 소화하던 중 경미한 옆구리 통증을 느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매체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의 수잔 슬러서는 24일 "이정후가 경미한 옆구리 통증으로 인해 25일 컵스와의 시범경기 개막전 라인업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큰 부상은 아니었다. 다만 샌프란시스코로선 이정후가 팀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활용도 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정후도 당장 서두르기보다는 회복에 집중했다. 슬러서의 보도를 인용한 미국 매체 'CBS스포츠'는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가 며칠 내로 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부상에 대해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옆구리 부상의 특성상 오래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팀으로선 최대한 (출전 여부에) 신중을 기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무엇보다도, 이정후에 대한 코칭스태프의 확신이 있었다. 이미 멜빈 감독은 이정후를 리드오프로 낙점한 상태였다.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에는 "이정후가 개막전 리드오프로 출전하지 않는다면 그건 충격을 받을 일"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구단의 관리와 배려로 시범경기 출격 준비를 마친 이정후는 28일 시애틀전에 1번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전, 3타수 1안타 1득점을 기록했다. 시범경기 출전을 잠시 미뤄야 했던 이정후는 몸 상태를 완벽히 회복한 뒤 첫 경기부터 팀의 기대에 부응했고, 경기를 소화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1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원정경기에서는 3타수 2안타(1홈런) 1타점으로 시범경기 돌입 이후 첫 홈런포를 가동했다. 이튿날에는 텍사스 1번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1안타를 기록했다. '아버지' 이종범 코치가 지켜보는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코칭스태프는 이정후의 성공을 확신한다. 미국 매체 'NBC스포츠 베이에어리어'는 지난달 25일 "팻 버렐 타격코치가 이정후와 관련해 "첫날 배팅 케이지에서 이정후의 움직임을 지켜본 뒤 '문제 없겠다'라고 말했다. 그가 (빅리그 무대에) 적응하긴 해야겠지만, 그는 콘택트 위주의 타격을 하는 선수라 인플레이 타구는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빠른 공에 적응해야 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이정후는 공을 잘 쫓는 선수다. 단지 경험해보지 못했을 뿐이고, 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그에게는 그저 다음 단계로 과정일 뿐이다. 우린 그가 인플레이 타구를 많이 생산하는 점을 좋아하는 것인데, 장타를 칠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고 치켜세웠다.
선수 본인도 최근의 흐름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정후는 1일 애리조나전 이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등 미국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구속도 빠르지만, 대부분 키가 크고 (손에서 공을 놓는) 릴리스 포인트가 다 높다"며 "그래서 공이 더 빠르게 보인다. 여러 변화구도 다 다르게 움직인다. 겨우내 이에 대비한 훈련을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쁘다"고 얘기했다.
MLB.com은 3일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의 정규시즌 개막전 라인업 및 선발진을 예상하면서 이정후가 1번타자 겸 중견수로 시즌을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이정후가 KBO리그에서 메이저리그로 향하면서 성장통을 겪을 수 있지만, 그의 수준급 콘택트 기술은 향후 몇 년 동안 샌프란시스코의 라인업에서 역동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정후가 순조롭게 빅리그에 적응하면서 그만큼 기대감도 커진 상황이다. 계속 상승세를 유지할지 지켜볼 일이다.
사진=AP, USA투데이스포츠/연합뉴스
유준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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