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 여제’ 또 꺾은 정수빈… “10년 뒤엔 우승을 밥 먹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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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 한 당구장에서 최근 만난 프로당구 선수 정수빈(26·NH농협카드)은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한다. 충분한 휴식을 강조하는 그는 자신의 성격이 “게으르다”고 했다. 하지만 정수빈에게 휴식은 큐를 다시 잡고 싶은 마음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이다. 당구장에 돌아오면 만족할 만한 샷이 나올 때까지 공을 똑같이 배치해 놓고 다섯 시간도 넘게 훈련한다. 당구의 ‘당’ 자도 몰랐던 대학생이 당구 입문 후 1년 반 만에 프로 무대에 입성해 두각을 나타낸 비결이다.

정수빈은 이번 시즌 애버리지 부문에서 김가영(1.158)과 ‘캄보디아 특급’ 스롱 피아비(35·우리금융캐피탈·1.039)에 이어 1.025로 3위를 달리고 있다. 더 이상 ‘유망주’가 아닌 차세대 스타임을 수치로 증명하고 있다.
정수빈은 2019년 친구 대신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당구를 처음 접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뒤 본격적으로 당구를 치기 시작한 정수빈은 “4구나 포켓볼을 쳐본 적이 없다 보니 두께를 조절하는 법도 몰랐다. 그래도 당구를 치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고 회상했다. 정수빈이 생각하는 당구의 매력은 섬세함이다. 정수빈은 “자세가 살짝 틀어지거나 당점이 위아래로 조금만 흔들려도 공에 걸리는 스핀이 완전히 달라진다”며 “원하는 대로 득점했을 때의 짜릿함이 엄청나다”고 했다.
당구에 푹 빠져 프로 선수가 되겠다고 부모님에게 ‘폭탄 발언’을 한 정수빈은 외골수처럼 당구에 집중했다. 연습을 하다가 어둑한 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았다. 밥을 먹거나 학교에서 강의를 듣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8시간 넘게 당구장에서 보냈다.
그렇게 1년여간 맹훈련을 한 정수빈은 2022∼2023시즌 TS샴푸·푸라닭 LPBA 챔피언십 2022 3차전에서 와일드카드로 LPBA에 데뷔했다. 지난해 5월 팀 드래프트에서는 NH농협카드의 부름도 받았다. 숙명여대 통계학과를 다닐 때 목표가 금융권 취업이었으니 길은 조금 비껴갔어도 생각했던 바를 이룬 셈이다.
정수빈이 꼽은 자신의 장점은 큰 키(171cm)다. 익스텐션(큐 연장 도구)을 쓸 일이 적어 무게감과 두께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그는 또 김가영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뒀을 때처럼 침착함을 유지하는 능력도 무기라고 했다. 정수빈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비결로 결과에 순응하는 마음가짐을 꼽았다. 그는 “경기에 임하기 전 항상 3가지 구절을 되뇌는데 그중 하나가 ‘지더라도 상대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자’다. 나머지 두 개는 영업비밀”이라고 했다.
당구가 취미가 아닌 업(業)이 되면서 성적에 대한 조바심으로 부담을 느낄 때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경기복에 하나둘 늘어나고 있는 후원사 패치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정수빈은 7일 팀 동료 황민지(24)와 8강 진출권을 놓고 다툰다. 이 대회에서 역대 개인 최고 성적(4강) 경신을 노리는 정수빈은 “올해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결승에 오르고 싶다”면서 “10년 뒤엔 우승을 밥 먹듯이 하는 상위권 선수가 돼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양=한종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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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작성일 2025.11.07 01: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