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수입 ‘0원’인 세계 1위 안세영…그에게 주어진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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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 교수)
파리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배드민턴 국가대표 안세영이 파리에서 처음 문제 제기에 나섰을 때 대다수 누리꾼이 응원했다. 대중은 당시 쟁점인 배드민턴협회의 선수 관리나 부상 관리 문제를 관료적 협회의 '갑질' 이슈로 받아들였다. 안세영이 귀국길에 공항에서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아 그녀가 향후 내놓을 입장이 더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그러던 차에 마침내 안세영의 인터뷰 내용이 전해졌다. 바로 '돈' 이야기였다.
"광고가 아니더라도 배드민턴으로 경제적인 보상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폰서나 계약적인 부분을 막지 말고 많이 풀어줬으면 좋겠다" "선수들에게 차별이 아니라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모든 선수를 다 똑같이 대한다면 오히려 역차별이 아닌가 싶다" 등의 내용이다.
협회의 갑질이나 비리에 관한 폭로가 나올 거라고 기대하던 대중은 돈 이야기가 나오자 충격을 받았다. 일각에선 안세영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결국 자신의 이익이 목적이었느냐는 비판이다. 처음엔 지지 여론이 압도적이었지만, 돈 이야기 이후엔 반반으로 갈린 상태다.
비판하는 측은 "잘 가라 안세영. 결국 돈을 원했군" "왜 배드민턴을 선택하고 돈을 저리 밝힌대?" "진짜 어린 선수가 무척 이기적이네. 동료 선수들은 안중에도 없네" "지금 하는 짓 보면 돈에 환장한 어린애로 보인다" "결국 자기가 다 돈 먹고 싶다는 거였구나" "안세영 짜증난다. 후원 못 받는 다른 선수들은 하루아침에 운동 포기해야겠냐. 이게 과연 국가대표의 자질인가" 같은 댓글들을 쏟아냈다.
"돈 벌고 싶다" 말하지 못하는 사회
어떤 비리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단지 돈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성적과 실력에 걸맞은 보상을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질타가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면 안 된단 말인가.
한국은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돈 이야기와 노골적인 이익 이야기가 금기시돼 왔다. 자고로 군자란 사적인 이익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 법이었다. 요즘엔 사회의 서구화, 합리화가 진행되고 자본주의 체제가 심화되면서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도 돈 이야기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는 걸 이번 논란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특히 국가대표가 돈 벌고 싶다고 이야기한 걸 많은 이가 부당하다고 여겼다. 국가대표쯤 되면 뭔가 고귀한 이상을 추구하면서 '이슬만 먹고 사는 존재'라고 여긴 듯하다. 하지만 국가대표도 사람이다. 국가대표로서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올리면 되는 것이지 정당한 수입까지 포기하고 희생만 강요당할 이유가 없다. 지금 비난하는 이들은 과연 자신들이 일한 것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아도 만족할까? 그런 상황이면 누구나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 국가대표도 마찬가지다. 또 국가대표든 누구에게든 그에 맞는 보상이 이루어져야 정당한 사회다. 보상이 미흡할 때 당당하게 합당한 대우를 요구할 수 있어야 정의로운 사회다.
안세영은 여자 배드민턴 세계 1위 선수로서 작년에 대회 상금으로 62만8020달러(약 8억6151만원)를 벌었다. 추가 수입은 소속팀 연봉인 6100만원뿐이었다고 한다. 기이한 수입 내역이다. 보통 대회 상금이 많을 정도로 우수한 선수라면 스폰서 광고 수입도 많을 텐데, 세계 1위 안세영은 그게 '0'원이다. 연봉도 6100만원이라는 턱없이 적은 액수다. 이런 기이한 내역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강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게 문제다.
실업연맹에 의해 계약금과 연봉이 제한되고 배드민턴협회가 스폰서 등을 규제했다는 것이다. 계약금과 연봉을 제한하지 않으면 거품이 너무 많이 껴서 실업팀들이 선수단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게 이유다. 스폰서 규제는 협회 수입 때문이었다. 배드민턴협회는 연간 40억원 정도의 스폰서를 받아 유소년 선수도 키우고 선수들 대회 출전도 시키는 등 배드민턴계를 운영하는 데 쓴다. 개인 스폰서가 활성화되면 협회 수입이 줄어들어 그런 운영을 못 하게 된다는 게 이유다.
이런 구조에서 세계 1위 안세영의 스폰서 수입 0원, 연봉 6100만원이라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건 안세영에게 부당하다는 인식과 더불어 상당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안세영이 국제대회에서 만나는 해외 유명 선수들은 우리나라보다 자유롭게 스폰서 계약을 맺어 상당한 수익을 올린다고 알려졌다. 남자 단식 1위인 덴마크의 악셀센은 아예 덴마크 대표팀을 이탈해 두바이로 이주하고 개인 코치진의 지도를 받는다. 우리나라 협회라면 특별 대우라고 펄쩍 뛸 것 같다. 덴마크 배드민턴협회는 두바이로 떠나는 악셀센에게 아쉬움을 나타내긴 했지만 "두바이로 이사하기로 한 결정과 새로운 영감에 대한 그의 열망을 존중한다"는 성명을 냈다. 악셀센은 그런 상태에서 덴마크 대표팀의 협조를 받으면서 이번 올림픽에 참여했다. 이런 사례를 보며 안세영은 매우 답답했을 것이다.
배드민턴계에 드리운 '집단주의'
한국에서 한국 선수가 악셀센 수준으로 자유를 누리기는 어렵다. 그래도 최소한 실력과 성적에 어느 정도만이라도 비례하는 보상을 받도록 할 수는 있지 않을까. 최고의 선수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그 희생을 통해야만 해당 종목을 운영할 수 있다는 게 황당하다. 우리나라가 선수의 희생이 아니면 배드민턴계를 운영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하다는 말인가.
우리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고 개인을 집단의 부속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 세계 1위 선수의 수입을 빼앗아 배드민턴계를 운영한다는 이야기에서 그런 집단주의 그림자가 보인다. 마치 공산주의나 전체주의 같기도 하다. 이런 구조에서 탁월한 개인의 성취가 계속 나타날 수 있을까. 연봉 상한제를 엄격하게 하려면 실력 상한제, 성적 상한제도 해서 딱 받은 돈만큼만 성취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어느 한 명이 지나치게 튀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지금처럼 세계 1위의 개인 스폰서 수입이 0원인 상황이라면 그런 걱정을 할 때가 아니다. 협회에 '정상적인 어른'이 있다면 세계 1위가 나타났을 때 그에 상응하는 처우를 알아서 먼저 고민했을 것이다. 지금 분위기론 그런 것 같지 않다. 이는 협회 인사들이 선수를 전체의 부속처럼 여겼다는 뜻이 아닐까.
이번 사태는 여러 쟁점이 있고 그 진상을 향후 밝혀내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합당한 대우에 대해 고민하는 일은 이와 별개다. 예컨대, 개인 스폰서 때문에 협회 수익이 반 토막이 난다면 20억원을 국가가 감당하는 방안도 있다. 먼저 협회가 모든 수입을 배드민턴계를 위해 투명하게 썼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계약금, 연봉 상한제에 대해선 실업연맹이 완화를 검토하고 있었다는 게 뒤늦게 알려졌다. 좀 더 빨리 개선했어야 했다. 한국 풍토에서 개인이 서구처럼 튈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만이라도 성취에 맞춘 보상은 필요하다. 그리고 정당한 수입을 원한다는 이유로 매도당하는 일도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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