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인터뷰] "세계 올스타까지 한 '아시아의 별'이 졌구려... 차범근 전엔 그가 있었지"... '한일전 11년 무패' 韓 GK 전설이 추억하는 가마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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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분이 정말 돌아가셨어?"
한국 축구의 살아 있는 골키퍼 전설 이세연 원로는 수화기 너머로 일본 축구 레전드 가마모토 쿠니시게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황망함과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세연 원로는 프로필상 1945년생이지만, 그때는 아기가 태어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시절이었기에 출생신고를 늦게 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여든을 훌쩍 넘긴 이 원로는 가마모토의 별세 소식을 듣고 "가마모토가 44년생이니까 나랑 비슷할거야. 그런데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폐암이 아니고 폐렴이래?"라며 애석해했다.
일본 복수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가마모토는 10일 일본 오사카부의 한 병원에서 폐렴으로 별세했다. 가마모토는 1960~1970년대 아시아 축구를 호령했던 대스타였다. 1977년 그가 세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최다골(76경기 75골) 기록은 반백년에 가까운 세월이 흐른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혼슈 서부 교토부 출신인 가마모토는 와세다대학교 재학 중이던 1964년 처음으로 일본 국가대표팀에 발탁됐고,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는 7골을 넣으며 일본이 아시아 국가 최초로 동메달을 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이 대회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가마모토는 일본 리그에서도 7회 득점왕을 차지하며 역대 최다인 202골을 넣었다. 1984년 현역 은퇴한 이후 J리그 감바 오사카 감독과 일본축구협회 부회장을 지냈고, 2002 FIFA 한일 월드컵 때는 일본 측 조직위원회 이사를 맡았다.
가마모토와 동시대에 활약한 이세연 원로는 1966년부터 1973년까지 태극마크를 달았다. 가마모토가 이 원로보다 2년 빨리 일본 국기를 가슴에 달고 활약했고, 이 원로보다 4년 늦은 1977년에 대표팀에서 은퇴했으니, 가마모토와 이 원로는 7년의 세월을 같이 한 셈.
이 시절은 일본 축구가 한국 축구보다 강했던 시절로, 한국 축구는 식민지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아 시쳇말로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고 이 원로는 증언했다. 이 원로는 "우리 부모 세대가 일제 치하에 있었잖아. 우리는 그때는 일본한테는 져서는 안 됐어. 무조건 이겨야 했지"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실제 이 원로는 성인 대표팀 포함 자신이 태극마크를 달았던 11년 동안 일본에 단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자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축구로선 상대에 공포의 대상이 1명 존재했는데, 그가 바로 가마모토였다고.
이 원로는 "정말 무시무시한 선수였지. 그냥 아시아에세 제일 가는 스타라고 보면 돼. 한 마디로 '아시아의 별'이었지. 그런데 돌아가셨다니. 아이고, 아시아의 별이 졌네. 차범근 전에는 가마모토가 최고였어. 올림픽 동메달을 그냥 따겠어? 당시 세계 올스타까지 들었지. 해외 진출도 본인의 의지만 강했다면 먼저 했었을거야"라고 가마모토의 위상을 증언했다.
당시 한국 축구는 김호-김정남 콤비가 수비에서 맹위를 떨쳤었다. 그리고 최후방에는 이세연이 있었다. 당시 일본에는 가마모토 말고도 스기야마라는 명공격수가 있었는데, 그를 김호가 전담 마크했고 가마모토는 이 원로 몫이었다고.
날고 긴다는 가마모토를 잡기 위해 이 원로는 당시 가마모토가 기피하는 허슬 플레이를 펼쳤다. 가마모토는 소위 말해 볼을 예쁘게 차는 당시 일본 축구의 전형이었는데, 그 성향을 역이용해 거칠게 밀어붙인 것. 이 원로가 펀칭하는 척 주먹으로 가마모토 뒤통수를 쳤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당시 기준으로 장신인 181cm의 육중한 공격수를 176cm에 불과한 이 원로가 막기 위해서는 '작은 고추가 맵다'는 것을 몸소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고. 이 원로는 "태클도 하고 좀 거칠게 했지. 그래서 그런지 난 가마모토랑 할 땐 한 번도 안 졌어"라며 추억에 잠겼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일화도 생겼다. 한번은 이 원로가 일본 원정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양팀 주장이 이 원로와 가마모토였다. 그런데 가마모토가 "나는 리 상과는 기자회견장에 앉기 싫다"라면서 인터뷰를 거부했다. 요즘 정서라면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는 등 큰일났겠지만, 당시는 그런 텃세들이 어느 정도는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가마모토가 왜 그랬느냐는 질문에 이 원로는 "경기 때마다 못살게 구니깐 내가 미웠겠지 뭐"라고 대답하며 허허 웃었다.
이 원로는 그래도 가마모토가 인정머리는 있는 친구였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에서 한국과 일본이 격돌했는데, 가마모토는 무더위에 지쳐하는 한국 선수들을 위해 얼음을 건네주곤 했다고. 그러면서도 정작 이 원로에게는 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유는 역시 미워서였다고. 이 원로는 "그래도 그 친구가 인간미는 있었지. 실력은 당연했고"라고 말했다.
가마모토는 어느 한 분야만 특출난 게 아닌, 슈팅이면 슈팅, 헤더면 헤더, 드리블이면 드리블, 소위 말해 다 갖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같은 토탈 패키지 공격수였다고 이 원로는 증언했다. 그러면서 "그런게 스타지. 하나만 잘 하면 뭘해. (차)범근이는 9년 이따 등장해서 동시대는 아니야. 범근이 전에 가마모토가 있었던게지. 가마모토가 그전에 외국에 나갔었다면 아시아 축구의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어"라며 가마모토의 위대함에 대해 설명했다.
이 원로와 가마모토는 은퇴 후 한 차례 마주할 일이 있었다. 그때 취재진 앞에서 같이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가마모토가 일본으로 돌아간 뒤 이 원로에게 사진을 건네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바빠서인지 몰라도 약속한 사진은 공유받지 못했다. 이 원로는 "가마모토가 사진을 보내주기로 했었는데 그 뒤로 연락이 없더니... 하늘로 간 줄도 몰랐네"라며 잠시 슬픔에 잠겼다. 이 원로와 고인이 10년 넘게 공으로 주거니 받거니 한 '한일 축구의 우정'이 수화기 너머로도 진하게 전해져와 가슴이 저릿했다.
글=임기환 기자([email protected])
사진=축구 사료 수집가 이재형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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