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선수에 아이돌 옷 입히고 춤 시킨 일본... "실패한 홍보"
작성자 정보
- 최고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19 조회
- 목록
본문
[황혜정 기자]
일본 여자야구의 살아있는 전설적인 투수 사토 아야미(36)는 여자야구 프로리그의 '생존법'에 대해 위와 같이 말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깊은 통찰이었다.
사토는 여자야구 선수로서 산전수전을 겪었다. 일본의 조그만 섬(가고시마현 아마미시)에서 태어나 중학생 때까지 남자 야구부에서만 뛰었다. 해당 학교에서 유일한 여자 선수였던 사토는 고등학생이 돼서야 도심으로 홀로 나와 여자 고등학교 야구부에 입단하면서 처음으로 동성 친구들과 함께 야구를 했다.
그가 20살이던 2009년 일본에서 여자야구 프로리그(JWBL)가 야심차게 창설됐고, 사토는 이듬해인 2010년, 꿈에 그리던 일본 여자야구 국가대표팀에 승선해 일본의 대회 우승을 함께 했다. 2014, 2016, 2018년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주관 '여자야구 월드컵' 대회 최우수선수(MVP)도 사토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사토가 소속된 JWBL은 오래가지 못했다. 4개팀으로 운영된 JWBL은 기대와 달리 수익면에서 계속된 부진을 면치 못하며 코로나19 펜데믹과 함께 절멸했다. 결국 JWBL은 2021년 '무기한 중단'을 선언하며 리그 폐쇄를 발표했고 현재까지 소식이 없다. 사실상 여자야구 프로리그의 해체인 것이다.
리그 주축 선수로서 쓰라린 절망감을 느꼈던 사토지만, JWBL은 여러 자산을 남기기도 했다. 우선, 2009년 창립 당시 일본 여자 엘리트 야구부가 전국에 단 5개에 불과했지만, 2021년 무기한 중단 당시 43개까지 늘었다. 그리고 같은 해, 일본 여자야구인들의 꿈이었던 '여자야구 고시엔' 대회도 처음 열리며 일본의 야구 소녀들이 일본 야구소년들과 똑같은 환경인 일본 프로야구 한신타이거즈 홈 구장에서 결승전을 치르기도 했다. 해당 대회는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에서 최근 여성 스포츠 열풍과 맞물리며 미국 여자야구 프로리그(WPBL) 창설 소식이 발표됐다. WPBL은 오는 2026년 창설을 목표로 한창 단장 중인데, 미국 유명 야구 분석 사이트 '팬그래프'에 따르면, 창설 발표 일주일 만에 WPBL에서 뛰고 싶다는 선수 등록자가 700명을 돌파했으며, 100군데가 넘는 개인·단체로부터 구단주 소유 의사 표명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사토는 JWBL의 흥망성쇠를 경험한 레전드 선수로서 WPBL의 특별 고문으로 영입됐다.
"사람들은 '야구'하는 여자 선수를 보러 오고 싶었던 것"
지난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인권, 지속가능성, 리더십에 대해 끊임없이 말해온 '필러 재단(Pillar Foundation)'이 사토의 강연을 온라인 줌(zoom)으로 개최했다. 해당 강연은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투수였던 심현정씨의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사토를 초청해 '여자야구 선수로서 사는 법' 강연을 듣고 질의응답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한-일 동시통역도 한국 여자야구 국가대표 투수이자 한일 이중국적자인 오노 사유리씨가 맡았다.
사토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JWBL의 홍보 전략이 잘못됐다. 그것은 완전히 실패했다"고 했다. 당시 일본 야구연맹은 남자 프로야구 리그와 차별점을 두기 위해 여자야구 선수들에게 춤을 추게 시키는 등, 야구가 아닌 것에 초점을 맞췄다. 사토는 당시를 떠올리며 "선수들이 아이돌처럼 옷을 입고 행동했고, 연맹도 아이돌을 홍보하듯 여자야구 리그를 홍보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해당 전략은 완전히 빗나갔다. 사람들은 '야구'하는 여자 선수를 보러 오고 싶었던 것이지, 예쁘고 귀엽게 치장한 여자 선수들을 보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토는 "여자야구, 특히 야구의 '본질'을 제대로 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JWBL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며 "WPBL에선 야구의 본질을 제대로 전해준다면 성공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팬그래프'에 'WPBL가 여성 스포츠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라는 기사를 올린 미국의 키리 올러 기자 역시 WPBL의 향후 홍보방법에 대해 "여성 스포츠에 대한 편견 때문에 종종 부차적인 홍보 활동에 치중하는 실수를 범하지만, 결국 팬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끄는 것은 수준 높은 경기력"이라며 '여성성'에 대한 강조가 아닌 스포츠 '본질'에 집중하라고 조언했다.
미국 현지에선 WPBL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것으로 보인다. 올러 기자는 "WPBL이 50년 후에는 (미국 메이저리그처럼) 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리그로 성장할 수 있다"라며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여성 스포츠 시장의 열풍과 성장세, 미국을 비롯한 인근 국가들의 여자야구 선수층, 관심도 등을 고려할 때 "WPBL이 3~5년 뒤에는 수익을 낼 것"이라고 했다. 사토가 말한 '야구의 본질'에 초점을 맞춰 리그를 운영한다면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전 스포츠서울 야구팀 기자입니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