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팀정보

“한국 포수도 MLB에서 할 수 있다는 것 보여주고 싶다”

작성자 정보

  • 최고관리자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본문



“한국 포수도 MLB에서 할 수 있다는 것 보여주고 싶다”




한국 야구에서 미국 진출은 어느 순간부터 계산의 대상이 됐다. 과거 고교 유망주들에게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는 중요한 하나의 선택지였다. 그러나 2010년 중반 이후 KBO리그에서 뛰는 것이 안정적이고 수익성까지 높다는 인식이 굳어지며 ‘한국에 남는 것이 정답’이라는 분위기가 자리 잡았다. 이런 가운데 3년 전 나 홀로 미국으로 향한 포수 엄형찬(21)의 도전이 눈길을 끈다.

엄형찬은 2022년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MLB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계약했다. 미국 생활 3년 차를 보낸 엄형찬은 현재 구단 산하 마이너리그 싱글A 소속이다. 엄형찬의 팀 내 유망주 랭킹은 29위.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포수라는 포지션의 특수성과 아시아 출신 선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가 크다.

지난 9일 서울 강동구의 한 실내 훈련장에서 만난 엄형찬은 인터뷰 내내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며 또렷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엄형찬은 KBO리그가 아닌 MLB 무대에 도전한 이유에 대해 “한국 포수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한번은 보여주고 싶다. 내가 길을 잘 닦아놓으면 뒤에 오는 포수들이 더 편하게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다부지게 대답했다.

엄형찬이 미국 진출을 꿈꾼 계기는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당시 미국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한 엄형찬이 마주한 전 세계 또래 선수들의 실력은 충격에 가까웠다. 엄형찬은 “그때 ‘나도 이런 곳에서 뛰어보고 싶다. 전 세계 선수들과 제대로 한번 붙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후 중·고교 시절 목표는 ‘무조건 미국행’이었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최근 마이너리그는 기숙사·식비 지원 등 환경은 과거보다 크게 개선됐지만, 낯선 땅에서 홀로 지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엄형찬은 “쉽게 적응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떨어져 살아보니 훨씬 오래 걸리더라. 한국에서 18년을 부모님과 살다가 언어가 다른 곳에서 혼자 버텨야 했다”고 전했다. 특히 첫 시즌에는 낯선 환경에 부상까지 한꺼번에 겹쳤다. 엄형찬은 “투수들이 던지는 공의 질이 완전히 달랐다. 단순히 빠른 게 아니라 직구가 싱커처럼 떨어지고, 커터처럼 휘었다. 변화구도 직구도 살아 있는 느낌이라 처음엔 정말 힘들었다”고 돌아봤다.

여기에 미국 생활에선 언어와 문화 차이도 극복해야 하는 중요한 요소. 엄형찬이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무기는 언어 능력과 붙임성 좋은 성격이었다. 어릴 때부터 원어민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영어를 배운 경험이 큰 자산이 됐다. 미국 진출 당시 이미 선수들이 하는 말을 절반 이상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포수는 매일 투수·코치·통역과 끝없이 소통해야 하는 자리다. 그래서 엄형찬은 라틴계 선수가 많은 마이너 환경을 고려해 스페인어까지 익혔다. 엄형찬은 “스페인어 수업도 열심히 듣고, 한국에 와서는 과외도 받았다. 구단의 지원으로 신인 지명 선수들과 도미니카에 갔을 때는 제가 제일 잘하는 편이라 애들 밥 주문도 대신했다”며 웃었다.

엄형찬은 호기심과 욕심이 많은 선수다. 자신의 옆에 코치가 찾아오면 쉴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엄형찬은 “처음에는 코치들이 ‘너무 많이 물어본다’고 농담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이제 먼저 다가와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냐’고 조언해준다”고 말했다.

엄형찬의 올해 성적표(타율 0.231·3홈런·26타점·26득점)만 보면 아직 MLB 문을 두드릴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엄형찬은 올해 단순한 숫자 이상의 존재감을 보였다. 구단은 타격 잠재력은 물론 프레이밍·송구·블로킹 등 모든 수비 항목에서 평균 이상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토털 패키지형 포수’라고 부른다. 엄형찬은 내년에 한 단계 위 리그인 하이 싱글A로 향할 예정이다. 캔자스시티는 2028년 엄형찬의 MLB 승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한국 포수도 MLB에서 할 수 있다는 것 보여주고 싶다”




엄형찬의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인물은 아버지 엄종수 씨다. 엄 씨는 2001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포수로 뛰었다. 짧은 커리어였지만, 엄 씨는 마이너리그 환경의 냉혹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엄 씨가 가장 강조한 것은 ‘사람’과 ‘언어’다. 이날 아들과 훈련을 마친 엄 씨는 “보통은 힘들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주저하기 마련인데, (엄)형찬이는 듣고도 ‘그래도 가겠다’고 하더라. 새로운 도전에 두려움이 없는 게 장점”이라고 아들을 칭찬했다.

마이너리그는 치밀한 과학적 접근이 이뤄지는 곳이다. 특히 ‘스몰마켓’인 캔자스시티 구단은 첨단 과학을 앞세워 부자 구단들과의 격차를 좁히는 데 집중해 왔다. 특히 캔자스시티는 소속 포수들에게 프레이밍, 블로킹, 송구, 기대 블로킹 대비 실제 막은 개수, 기대 스트라이크 대비 추가로 만든 스트라이크 수 등을 매일 리포트로 제공한다.

엄형찬은 이 지표들에서도 ‘평균 이상’ 평가를 받고 있다. 엄형찬은 “구단 포수 리포트를 보면 제 유형을 정확히 알 수 있다. 프레이밍·블로킹·송구 모두 장점이 숫자로 드러난다. ‘패키지 포수’라는 말을 들으면 책임감도 느낀다”고 밝혔다.

언어 능력과 수비력, 그리고 성실함까지 갖춘 엄형찬은 팀 내 투수들에게 ‘믿고 맡길 수 있는 포수’로 자리 잡았다. 팀 내 별칭은 ‘엄이(Ummy)’. 엄형찬은 “이름이 독특해서 경쟁력이라고 본다. 올해는 투수들이 ‘오늘은 엄이랑 하고 싶다’고 한다. 미국 선수든 남미 선수든 대화가 편하고, 제가 나올 때 팀·개인 성적도 좋아서 많이 찾아준다”고 말했다.

엄형찬의 롤모델은 커트 스즈키 현 LA 에인절스 감독이다. 스즈키 감독은 2007년 오클랜드에서 데뷔해 워싱턴 내셔널스, 미네소타 트윈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에인절스까지 5개 팀에서 17년간 포수 마스크를 쓴 이력의 소유자다. 통산 성적은 1635경기 타율 0.255. 스즈키 감독은 겉으로 드러나는 성적이 화려하진 않았지만 매 시즌 팀이 필요한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낸 전형적인 ‘롱런형 포수’였다. 엄형찬은 “슈퍼스타가 아니어도 괜찮다. 여러 팀을 거치든, 한 팀에 오래 남든 최대한 오래 빅리그에서 뛰고 싶다. 스즈키 감독님처럼 팀들이 필요로 하는 포수가 되는 게 꿈이다. 그런 선수들은 지도자로서도 강점을 갖는다”고 포부를 밝혔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엄형찬에게 포수의 진짜 매력을 물었다. 엄형찬은 “공 잡는 걸 정말 좋아했다. 축구를 하면 늘 골키퍼였다. 포수는 야수를 바라보며 전체 흐름을 조율하는 자리다. 경기 흐름에 직접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매력”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정세영 기자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