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코트 복귀한 이재영, 등 뒤엔 여전히 싸늘한 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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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스포츠판에서 다시금 '학폭(학교폭력)'이란 단어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지금은 '과거'처럼 느껴지는 배구 쌍둥이 자매 중 한 명의 일본 여자배구단 입단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재영은 최근 일본여자배구 SV리그의 빅토리나 히메지 구단에 입단했다. 히메지 구단은 이재영을 "세계적인 수준의 공격력과 수비 능력을 갖춘 아웃사이드 히터(예전 레프트 포지션)"라고 팬들에게 소개했다. 이재영이 프로 구단에 적을 두게 된 것은 4년여 만이다.
이재영은 한때 여자배구 최고의 선수였다. 2014~15 시즌 V리그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지명을 받아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며 첫 시즌부터 주전을 꿰차면서 신인왕도 받았다. 2016~17 시즌과 2018~19 시즌에는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도 뽑혔다. 2018~19 시즌에는 12년 만에 흥국생명의 통합 우승을 이끌면서 챔피언결정전 MVP 영광도 안았다. 역대 최초 만장일치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 MVP였다. 2019~20 시즌 뒤 이재영은 흥국생명과 3년간 최소 18억원 보장 계약을 했다. 명실상부 여자배구 톱스타였다.
급속도로 악화된 민심과 팬심에 '징계·박탈' 철퇴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은 빛났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동메달을 따는 데 일조했다. 2020년 열린 도쿄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전체 득점 2위, 공격 효율 1위, 리시브 3위를 기록하며 한국이 전승 1위로 올림픽 출전 자격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다. FA로 흥국생명으로 이적한 쌍둥이 동생인 세터 이다영과 남녀 배구 선수 최초로 자동차 광고를 찍기도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였을까. 과거 학교폭력(학폭) 문제가 드러났다. 흥국생명으로 복귀한 김연경과의 팀 내 불화 속에서 이다영의 자살 소동은 예상치 못하게 학폭 논란으로 확산됐다. 이다영이 개인 SNS에 '괴롭히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괴롭힘 당하는 사람은 죽고 싶다'는 등의 글을 올린 게 불쏘시개가 됐다. 중학교 시절 쌍둥이 자매에게 '괴롭힘을 당한 사람들'이 이들의 학폭을 폭로하고 나선 것. 학폭 피해자의 입장에서 이다영의 SNS상 피해 호소 메시지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한 셈이다.
학폭 문제에 민감한 국민 정서상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졌다. 폭로 내용 중 '칼을 들고 협박했다'는 내용이 있어 더 큰 충격을 줬다. 흥국생명과 쌍둥이 자매는 뒤늦게 사과했지만 팬들은 이미 등을 돌린 상황이었다. 쌍둥이 자매의 자필 사과문조차 구단이 시켜서 올렸다는 게 드러나면서 여론은 더 악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다영은 SNS 활동으로 여론을 더욱 자극했다. 쌍둥이 자매의 다소 안일한 태도와 구단의 미숙한 일처리는 학폭 추가 폭로로 이어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됐다. 흥국생명은 결국 자체적으로 두 선수에 대해 무기한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고, 대한배구협회 또한 국가대표 자격을 무기한 박탈했다.
흥국생명은 2021~22 시즌을 앞두고 두 선수를 등록하려다가 여론의 반발로 취소했다. 쌍둥이 자매가 학폭을 폭로한 이들을 고소했다는 사실까지 알려져 팬들의 마음은 더욱 닫혔다. 흥국생명이 선수 등록을 포기하면서 이재영, 이다영은 한국배구연맹 규약에 따라 자유계약 신분이 됐다. 국내 팀에서 뛰는 게 여의치 않게 된 이들은 2021년 말 그리스여자프로배구 A1리그의 PAOK 테살로니키에 입단했다. 하지만 이재영은 고질적이던 왼쪽 무릎 부상 때문에 몇 경기 뛰지 못하고 국내로 돌아왔다. 2022~23 시즌을 앞두고 이재영은 페퍼저축은행을 통해 V리그 복귀를 타진했으나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무산됐다. 이다영은 그리스 리그에 이어 루마니아, 스위스 등 유럽 리그에서 뛰다가 올해 초 새롭게 출범하는 미국여자프로배구의 샌디에이고 모조에 입단했다.
이재영은 페퍼저축은행 입단이 무산된 뒤 배구 코트와는 떨어져 있었다. 지난해 7월에는 "제2의 인생을 응원해 달라"는 글을 자신의 SNS에 남겨 은퇴를 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리그 구단 입단에 합의하면서 4년 만에 코트에 서게 됐다. 이재영은 히메지 구단을 통해 "지난 사건들을 진지하게 반성한다"면서 "배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했다. 다시 뛸 수 있게 기회를 준 팀에 감사하다"고 했지만 아직도 많은 이가 의문을 품는다. 그가 피해자에게 충분한 사과를 했는지, 진정한 반성을 보여줬는지에 대한 판단이 여전히 엇갈리는 탓이다.
고개 숙인 이다영 "이재영은 관련 없어"
국내 배구단 안팎에서 이재영만은 구제해 줘야 한다는 여론도 더러 있다. SNS 등에서 물의를 일으킨 이다영과 달랐기 때문이다. 이다영 또한 지난해 8월 출국하면서 "(학폭이 벌어진) 당시 자리에 같이 있지도 않았던 이재영이 제 잘못으로 큰 피해를 봤다. 쌍둥이라는 이유로 배구를 못 하게 됐다. 학폭 사건은 이재영과 관련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었다.
학폭 문제에서 이재영, 이다영에게만 여론이 유독 가혹한 점은 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때 국가대표로도 뛴 남자배구 송명근은 쌍둥이 자매와 비슷한 시기에 학폭 사실이 드러났지만 현재 삼성화재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학폭이 드러난 뒤 곧바로 공개 사과를 하고 잔여 시즌에 출전하지 않았다. 이후 상무에 곧바로 입대했다.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우완 투수 안우진 또한 학창 시절 학폭으로 대한체육회로부터 국가대표 영구 제명을 당했으나 프로 선수 생활은 이어가고 있다. NC 다이노스에 1차 지명됐다가 학폭으로 지명이 취소(2020년)됐던 김유성의 경우 대학에 진학했다가 2022년 열린 신인 드래프트 때 2라운드 전체 19순위로 두산 베어스의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단했다. 현재 1, 2군을 오가면서 공을 던지고 있다.
학폭은 아니지만 여자친구 폭행 혐의로 물의를 빚었던 남자배구 정지석 또한 정규리그 2라운드 잔여 경기 출전 금지 징계만 받았을 뿐이다. 한 배구 관계자는 "결국 이재영 선수 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본다. 본인이 국내 코트에서 뛰기를 원한다면 먼저 피해자들과 팬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 꾸준한 재능 기부로 사회공헌 활동 등을 하면서 과거 행동에 대한 반성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리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선수 자신의 태도와 선택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재영은 일본 리그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까. 잘하든, 못하든 국내 여자배구계는 씁쓸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VNL(발리볼네이션스리그)에서 1승(11패)밖에 하지 못하면서 강등을 당한 지금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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