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조차 못 지른 이정후, 3만6천 명이 말을 잃었다… 충격의 그 현장, SF 초비상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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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샌프란시스코는 최근 어지러운 로스터 정비를 진행하고 있다.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쏟아지면서 마이너리그에서 어린 선수들을 채워 넣는 작업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진행되고 있다. 가뜩이나 팀 성적이 5할 아래로 처진 가운데 곤혹스러운 나날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에이스로 기대하고 영입했던 블레이크 스넬이 부상으로 이탈해 13일(한국시간)부터 재활 등판을 시작한 가운데 5월 4일에는 포수 패트릭 베일 리가 뇌진탕 7일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이어 5월 6일에는 백업 포수 톰 머피가 왼 무릎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가며 개막 로스터에 있던 포수 두 명이 다 빠졌다. 5월 9일에는 호르헤 솔레어가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부상자 명단에 갔고, 5월 11일에는 닉 아메드가 왼 손목 부상으로, 그리고 5월 12일에는 오스틴 슬레이터가 뇌잔탕으로 역시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아메드, 머피, 슬레이터, 그리고 솔레어의 메이저리그 통산 출전 경기 수를 합치면 2731경기였다. 그러나 이들을 대신해 올라온 헬리엇 라모스, 브렛 와이슬리, 케세이 슈미트, 블레이크 사이볼의 메이저리그 출전 경기 수를 다 합쳐도 297경기에 불과했다. 기량은 물론 경험에서 너무 차이가 났다. 심지어 이정후까지 빠져 있었다.
팀의 리드오프이자 중견수인 이정후도 9일 콜로라도와 원정 경기에서 파울 타구에 왼발을 맞아 사흘 동안 결장한 상황이었다. 이르면 12일 복귀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샌프란시스코는 무리를 시키지 않는 선에서 하루 휴식을 더 줬다. 그래서 13일은 샌프란시스코 구단도 기대를 한 날이었다. 12일 베일리가 복귀한 것에 이어, 13일에는 이정후가 복귀하며 타순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경기 시작 전부터 이상했다. 당초 이날 선발 4번 지명타자로 출전할 예정이었던 베일리는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갑자기 라인업에서 빠졌다. 경기 시작 30분 전을 앞두고 부랴부랴 오더를 대거 교체해야 했다. 더 큰 재앙은 경기 시작 후 15분 만에 나왔다. 이번에는이정후가 크게 다쳤다. 샌프란시스코로서는 망연자실한 순간이었다.
최근 6경기 연속 안타를 때리며 타격감을 끌어올리고 있었던 이정후는 13일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오라클파크에서 열린 ‘2024 메이저리그’ 신시내티 레즈와 홈 3연전 마지막 경기에 선발 1번 중견수로 출전했다. 하지만 1회 수비부터 펜스와 세게 부딪히며 크게 다친 끝에 타석 한 번 소화해보지 못하고 피츠제럴드로 교체돼 경기를 마쳤다.
선발 카일 해리슨이 시작부터 흔들렸다. 최근 들어 호투를 이어 가고 있던 좌완 영건 해리슨은 1회 선두 타자 TJ 프리들에게 몸에 맞는 공을 내줬다. 초구부터 제구가 안 되며 프리들이 엄지손가락을 강타했다. 불안한 출발이었다. 엘리 델라크루스를 우익수 뜬공으로 잡았지만 이후 프리들의 2루 도루 때 송구 실책이 나오며 1사 3루가 됐고 스펜서 스티어에게 볼넷을 허용한 것에 이어 2루 도루 허용, 그리고 스튜어트 페어차일드에게 볼넷을 내주고 2사 만루에 몰렸다.
우타자 바깥쪽 높은 코스에 패스트볼을 잘 던지는 해리슨이지만 이날은 이 코스 제구가 크게 벗어나며 어려운 승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이머 칸델라리오에게 큰 타구를 허용했다. 중견수 키를 넘겨 펜스까지 가는 큰 타구였다.
중견수 이정후가 발 빠르게 대처에 나섰다. 첫 스타트가 아주 빠르지는 않았지만 낙구 지점을 대략적으로 파악한 뒤에는 전력으로 쫓아가기 시작했다. 이정후가 마지막 순간 공을 잡기 위해 점프를 했다. 그러나 여기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이정후가 뻗은 글러브에 공이 맞고 튀었고, 펜스를 맞혔다. 그런데 이정후는 탄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결국 펜스와 크게 부딪혔다. 왼 어깨, 옆구리, 팔꿈치, 손목이 모두 타격을 받을 만큼 세게 부딪혔다.
이 타구의 타구 속도는 104.3마일로 빨랐고, 비거리는 407피트에 이르렀다. ‘스탯캐스트’가 집계한 기대 타율은 0.830으로 매우 높았다. 심지어 30개 구장 중 19개 구장에서는 홈런이 되는 타구였다. 이정후의 죄는 이를 최선을 다해 잡으려는 것밖에 없었지만, 대가는 너무 가혹했다. 펜스와 부딪힌 이정후는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하필 신시내티 불펜 쪽이라 다른 펜스 지역에 비해 덜 푹신한 자리였다.
2사 상황이라 이미 세 명의 주자가 모두 홈을 밟은 가운데 샌프란시스코는 3실점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정후를 대신해 공을 처리한 마이크 야스트렘스키가 내야로 공을 던진 뒤 곧바로 이정후의 상태를 살피러 달려갔다. 가장 가까이서 이정후의 충돌을 지켜본 야스트렘스키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앞에서 2루타에 환호하던 신시내티 불펜 투수들도 얼굴에 웃음기가 가셨다.
곧바로 트레이너와 통역이 뛰어 나왔고, 노령의 밥 멜빈 감독도 더그아웃에서 중앙 방향의 가장 먼 지점까지 와 이정후의 상태를 살폈다. 한참을 살핀 결과 이정후가 더 이상 경기에 뛸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이정후는 어깨와 팔꿈치를 최대한 고정한 상태로 그라운드를 떠났다. 3만6210명이 운집한 오라클 파크는 한동안 정적에 빠졌다. 모두가 충격이었다.
경기 후 발표도 혼선이었다. 당초 첫 발표는 어깨 염좌였다. 염좌는 근육이 찢어지거나 혹은 늘어난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정후의 염좌는 찢어졌다 쪽에 가까웠다. 그래도 골절이나 탈구처럼 긴 재활을 요하는 최악의 사태는 면했다고 다행스러워했다. 하지만 경기 후 멜빈 감독과 구단은 이정후의 상태가 어깨 탈구라고 정정했다. 14일 MRI 촬영이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MRI 촬영을 한다는 건 어느 정도의 손상은 보여 더 정밀한 검진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14일 검진에서 상태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 수술을 한다면 재활에 얼마나 걸릴지가 나온다. 다만 손상이 심각하다면 재활보다는 수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이정후는 이전에도 수비 도중 이 부위를 다친 적이 있다. 탈구는 근육이 손상돼서 발생하는 것인데, 근본적인 해결책은 뼈를 감싸는 근육을 복원하고 꼬매 뼈를 잡아주는 방법이다.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와 6년 계약을 했다. 문제가 가볍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6년 동안 리스크를 안고 가야 하는 것인데 차라리 지금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하고 가는 게 나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또 대다수의 구단들이 그런 방법을 택한다.
탈구 진단을 받은 만큼 이정후로서는 해당 부위의 손상이 심각하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손상이 심하지 않다면 극적으로 수술을 피할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수술을 한다면 당분간 결장은 불가피하다. 자칫 잘못하면 5월과 6월 일정을 모두 날릴 수도 있다. 회복 후 근력을 붙이고, 마이너리그에서 재활 경기까지 해야 하기 때문에 15일 만에 돌아올 수 있는 부상은 아니다. 이정후로서는 안타까운 일이다.
한창 감을 끌어올릴 때 찾아온 부상이라 더 서럽다. 이정후는 시즌 초반 빠른 타구 속도에도 불구하고 공이 뜨지 않으며 내야 땅볼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이 문제점을 인지한 이정후는 발사각을 계속 띄우려고 노력했다. 이는 기록에서도 잘 드러난다. 4월 중순까지 평균 발사각과 4월 중순 이후 발사각의 차이는 분명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타율도 점차 오르고 있었다. 2할4푼대까지 떨어졌던 타율은 최근 6경기 연속 안타 행진 속에 0.262까지 올랐다. 9일 콜로라도와 경기에서는 모처럼 장타도 나왔다. 최근 6경기에서 29타수 9안타, 타율 0.310을 기록해 타격감이 상승 중이었고, 올해 158타석 중 삼진은 13번으로 8.2%의 비율은 메이저리그에서 세 번째로 낮았다. 타율은 0.262였지만, 발사각과 타구 속도를 고려한 기대 타율은 0.283으로 이보다 훨씬 더 높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직후 발에 공을 맞아 사흘을 결장했고, 복귀하자마자 큰 부상을 당했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디 애슬레틱’은 “샌프란시스코 외야수 이정후가 신시내티와 경기에서 왼쪽 어깨가 탈구됐다. 최근 부상자가 속출했던 샌프란시스코는 이정후가 중요한 활약을 펼쳐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정후는 1회 외야 펜스 부딪히면서 탈구됐다”면서 “이정후는 펜스에 부딪힌 후 워닝트랙에 엎드린 상태로 어깨 뒤쪽을 부여 잡았다. 이정후는 데이브 그로슈너 트레이너의 부축을 받아 더그아웃으로 돌아갔고, 그대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고 설명했다.
모처럼 경기에 나선 만큼 의욕이 넘쳤을 것이다. 2사 만루 상황에서 공을 잡느냐, 마느냐에 따라 무실점과 대량 실점이 갈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펜스도 아랑곳하지 않고 날아올랐다. 하지만 공을 잡지 못한 것은 둘째치고 큰 부상을 당하며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됐다. 이정후의 부상 정도가 14일 명확하게 드러날 전망인 가운데, 이제는 운을 바라야 할 처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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