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곧 돌아와 정착하겠다" 女대표팀 5년 만에 떠나는 벨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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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콜린 벨 여자 축구대표팀 감독은 한국을 잠시 떠났다. 그는 독일계 영국인이지만, 한국에 머무른 시간 동안만 돈벌이를 해가는 게 아니라 아예 눌러앉을 생각을 밝혔다. 한국 대표팀 감독이라면 상주하고 K리그를 배우는 걸 넘어서 한국어도 공부하고, 한국 사우나와 같은 문화까지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벨 감독은 2019년 여자 대표팀 최초 외국인 감독으로 부임했다. 최근 4년 8개월 만에 계약을 종료한 뒤 스코틀랜드 에버딘 여자팀 감독으로 이직했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 벨 감독과 만나 한국 여자축구에서 느낀 점을 물었다. 그는 한국 여자축구 문화를 비판하며 WK리그 감독들과 긴장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벨 감독은 5년 가까운 기간 동안 배웠다는 한국어를 영어 사이에 섞어 이야기했다. "저는 너무 슬펐어요. 그리고 저는 많이 아쉬워요"라고 한국 축구에 잠시만 안녕을 고했다. 한국에서 보낸 일상을 이야기할 때는 "저는 매일 호수공원 산책했어요. 매주 저는 한강 자전거 탔어요"라고 했다. 한국 축구에 대해 제언할 때는 "한국사람 자신감 필요해요"라고 자신의 생각을 요약했다.
▲ 떠나기 직전까지 강조한 '고강도'
벨 감독은 독자들에게 인사해달라는 말에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아 안녕하세요 여러분"이라는 한국어 인사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여자대표 선수들과의 첫인상을 묻자 벨 감독은 빠르게 친해지고, 선수들의 동기부여를 끌어냈다는 점에 대해 자부심을 밝혔다.
"한국에 아주 가까운 친구도 많이 생겼습니다. 다음 월드컵까지 한국을 지휘하고 싶었지만 아시다시피 상황이 변해서 떠나게 됐어요. 2019년 10월 처음 인천공항에 내렸을 때를 기억합니다. 그리고 10~15일 뒤에 선수들을 소집해 짧은 훈련을 진행한 게 첫 만남이었어요. 처음엔 조금 부끄러워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빠르게 극복했습니다. 일단 훈련에 있어 좋은 관계를 형성했고, 저는 매번 훈련마다 높은 훈련성과를 기본으로 하되 좋은 분위기를 형성하려 했어요. 그리고 매 훈련이 끝날 때마다 선수들은 다음 훈련을 기다렸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지난 5년 동안 우리가 성취한 것이죠."
그리고 곧 벨 감독이 한결같이 강조해 온 '고강도'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한국 여자선수들의 평소 훈련강도가 낮기 때문에 체력과 경기강도를 끌어올릴 수 없다는 게 벨 감독의 지론이다. 그가 A매치에서 패배한 직후에도 전술보다 축구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건, 책임을 회피한다며 비판받은 이유이기도 했다. 벨 감독은 마지막 인터뷰에서 "각 경기의 전술적 패착은 내 잘못이다"라면서도 여전히 한국 여자축구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직언을 잔뜩 쏟아냈다.
"아시안컵 결승에 진출한 성과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 뒤에 월드컵, 아시안게임, 올림픽 예선 등 결과가 좋지 않았던 대회들이 있었죠. 그런데 언론에서는 실패의 이유에 대해 들여다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더군요. 목표 달성에 실패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뭡니까? 대표팀 감독은 프로팀 감독처럼 원하는 선수의 체력 수준을 100%로 만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지금까지도 마찬가지고 제가 가장 크게 아쉬운 점입니다. 거의 5년 동안 전 계속 이야기했습니다. 선수들이 지금의 여자축구 시스템 속에서 뛰는 한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요. 이 시스템은 바뀌어야 합니다."
벨 감독은 두 손을 들어올렸다. 한 손을 들어 "이 정도가 한국 여자축구 수준"이라고 하더니, 다른 손을 그 위에 올려 "이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했다. 선수들의 기술이나 타고난 체격이 아닌 체력과 경기강도에 대한 이야기였다.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 주면 보통 우리의 수준에 도달해 줍니다. 그런데 세계적인 수준은 그 위의 이정도입니다. 제가 거기까지 끌어올려줄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런 토대가 없으니까요. 위 수준에 도달하려면 그만큼의 강도, 전력질주, 경기 중 행위의 강도 등이 필요합니다. 그 토대는 클럽에서만 다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대표팀에 왔을 때 제가 전술적인 개념을 더해줄 수 있는 겁니다. 이 점이 제겐 가장 아쉽습니다. 여자축구는 남자축구와 완전히 다릅니다. 남자축구는 U23 대표팀도, K리그1도, K리그2도 면밀한 검토의 대상이 되죠. 하지만 여자축구는 A대표팀만 검토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모든 분들이 여자축구를 좀 더 진지하게 봐줬으면 합니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나은 토대가 필요하거든요."
▲ 내가 축구협회에 제출한 리포트, 쓰레기통에 들어갈 운명
벨 감독은 자신이 이끌었던 좋은 경기들도 많았다며, 그 경기에서는 '고강도'가 실현됐다고 했다. 그런데 대표팀이라면 매 경기 고강도를 유지해야지, 한 경기 고강도 이후 다음 경기에서 체력상황이 급격히 하락해선 안 된다. 이는 리그 스케줄과 훈련 프로그램 문제 때문이라고 했다. 올해 초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체코를 상대로 보여준 경기력은 자신이 부임한 뒤 최고였는데, 며칠 뒤 포르투갈 상대로는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대패를 당한 것이 한 예였다. 그밖에도 그는 사례를 잔뜩 들었다.
"가끔은 고강도가 잘 됩니다. 미국과 캐나다를 상대로 무승부했고, 호주를 이겼습니다. 일본과 중국을 상대로도 비겼어요. 그때 퍼포먼스는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대표팀은 가끔 고강도가 아니라 매 경기 고강도가 필요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 기초 체력 수준은 클럽 수준에서만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WK리그 감독들에게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인기가 없었습니다. 증명할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습니다."
벨 감독이 더 구체적으로 지적한 행정상의 문제점은 대한축구협회와 한국여자축구연맹(KWFF)가 분리돼 있고 그 산하 많은 연맹들도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 공조가 안 된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어드바이저 역할을 겸하며 축구협회에 아무리 제언을 건네도 협회와 연맹이 분리돼 있다는 점에 가로막혀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고 했다. 축구협회는 대표팀에 대한 지원도 좋았고, 개인적으로도 좋은 관계였으며, 자신의 제언도 잘 듣는 편이라고 했다. 그러나 잘 들어줄 뿐 근본적인 변화의 기미는 없었다.
"WK리그는 단 8팀으로 구성돼 있죠. 그런데도 종종 일주일에 2경기를 합니다. 경기 간격이 너무 짧기 때문에 선수들이 회복할 시간이 부족하고, 고강도 훈련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몇 주 전 저는 KFA에 여자축구의 미래에 대한 명료한 관점을 전달했어요. 기초적인 것부터 전반적으로요."
벨 감독은 5년 동안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대표팀 전술이 아니라 여자축구 전반적인 변화를 일으키려 했던 자신의 시도는 다 실패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이끌어낸 변화는 A매치 데이를 자주 활용해 평가전을 잡는 것이다. 축구협회만 움직여도 가능한 변화다.
"우리는 재능 있는 선수들이 있지만, 그 선수들이 잠재력을 다 끌어내려면 훈련하고 생활하는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 변화는 학교, 대학, WK리그에서 시작됩니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이들에 대한 권한이 없고 국가대표팀만 관리할 수 있습니다. 학교와 대학은 서로 다른 관리기관이 있고 WK리그는 KWFF가 있습니다. 그 시스템이 변화하고 활기를 되찾는다면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잠시 후 그는 "저는 축구협회에 콘셉트를 제시하면서 문제점만 지적한 게 아니고 해결방안까지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프레젠테이션은 아마 쓰레기통에 들어갈 것입니다"라며 변화를 이끌어내기 힘들다고 말했다. 여자축구가 여전히 희망적이라는 어조를 유지하려 했지만 종종 비관적인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 한국은 한때 크게 앞서있던 호주, 심지어 동남아에도 따라잡히고 있다
벨 감독은 여자축구 리그와 대표팀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만 있다면 얼마든지 크게 발전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포르투갈의 예를 들었다. 포르투갈은 강력한 남자축구에 비해 여자축구가 크게 뒤떨어졌다. 벨 감독도 유럽 약체인 아일랜드 대표팀을 이끌고 포르투갈을 꺾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으로 투자하면서, 프란시스쿠 네투 현 감독에게 2014년부터 10년째 지휘봉을 맡겼다. 동시에 클럽축구에서는 벤피카가 최근 여자팀을 창단하는 등 발전이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2017년 최초로 여자 유로 본선에 진출했고, 2023년에는 여자 월드컵 본선에 최초 진출했다.
문제는 한국이 장기적 계획 없이 정체 혹은 퇴보하는 동안 아시아에서 약진하는 국가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벨 감독은 여자 연령별 대표팀 경기 결과에 관심 없으시겠지만 이게 진짜 문제라면서 여러 예를 들었다.
"필리핀은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이 6, 7골을 퍼부으며 이겼던 상대죠. 몇 주 전 U17 아시안컵에서 한국과 필리핀이 1-1로 비겼습니다(결과는 한국 3위). 필리핀도 좋은 정책을 많이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호주를 보세요. 마틸다(호주 여자대표팀 별명)는 많이 강해졌어요. 제가 한국에 처음 왔던 해를 기억하는데 2019 U20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호주를 9-1로 꺾었어요. 우리의 추효주 세대죠. 그런데 몇 달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U20 아시안컵이 열렸는데, 한국은 두 경기 모두 졌어요. 상황이 변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죠? 앞으로 2, 3년 안에 필리핀, 베트남, 우즈베키스탄이 더 강해질 것입니다."
▲ 클럽이 없다, 축구부와 축구협회로는 부족하다
벨 감독과의 대화를 마친 뒤 그가 비판한 지점들을 모아보니, 여자축구 시스템이 학원축구 중심이라는 점이 문제라는 일관된 인식을 알 수 있었다. 그가 벤피카 여자팀을 거론한 것처럼 남자축구계에서 자리 잡은 팀이 여자팀 및 연령별 여자팀을 운영한다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 마치 한국의 시청팀처럼, 외국에서는 프로축구팀으로만 알려져 있는 구단이 사실 아마추어 종목과 여자종목까지 같이 운영하는 경우가 흔하다. 현재의 축구부 중심 육성 문화에는 엘리트 축구부만 있는 셈이고, 생활체육으로서 어린 여자아이들이 공을 찰 기회가 제한적이다. 이는 여자축구 전체 인구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한국의 근본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학원축구가 중심인 상황에서는 유망주 육성이 어렵다. 골키퍼가 극단적인 예다. 그에게 한국 골키퍼 문제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왜 40세 김정미를 아직도 주전으로 기용할 수밖에 없는지 해명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최근 A매치에서도 김정미 선수가 왜 아직도 주전이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일단 40세든 14세든 한국 최고 골키퍼니까 주전인 겁니다. 하지만 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문제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WK리그에 얼마나 많은 골키퍼 코치가 있는지 알아봤어요. 그 수는 매우 적었습니다. 골키퍼는 전문화된 포지션이기 때문에 전문 코치가 필요합니다. 현재 한국은 많은 골키퍼를 배출할 수 없습니다. 훈련이 없기 때문입니다. 축구협회에는 코치가 있지만 골든에이지 등의 프로그램이나 연령별 대표팀 소집으로 1년에 딱 2번 선수들을 지도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축구부로 돌아가면? 또 코치 없는 골키퍼가 되는 겁니다. 이처럼 현재 상황은 나쁘지만, 해결은 의외로 쉬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대표팀 감독은 그 나라에 살아야 한다, 그리고 난 한국에 정착하고 싶다
5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국에 머무르면서 한국어 공부까지 한 벨 감독은 위르겐 클린스만 전 남자대표팀 감독과 대조적이다. 그에게 대표팀 감독은 그 나라에 상주해야 하냐고 물었더니 당연하다는 듯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 아침에 정몽규 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개인적으로는 국가대표팀 감독이 그 나라에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나라의 문화를 알아야 합니다. 저는 5년 동안 한국 문화를 배웠지만, 여전히 배워야 할 것들이 많고 받아들여야 할 것들도 많습니다. 모든 것에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시행하려 했거나 제안한 것이 사람들에게 동의되지 않았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문화를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그 나라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습니다. 한국어를 일주일에 한두 번 공부하고, 모든 훈련에서 한국어를 쓰려 노력하고, 경기 전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감정적으로 이어지려면 그 나라에 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일산에서 쇼핑하고, 자주 가는 카페의 단골이 되고, 헬스장과 사우나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게 대표팀 감독의 일에는 도움이 됩니다."
그는 한국이 퍽 마음에 든 듯, 영국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잠깐 영국에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독일에 있는 아들과 손주들을 보고 싶긴 하지만 이제까지 살아온 60년 넘는 세월 중 한국에서의 5년이 가장 좋았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수년 후 한국에 돌아와 정착하고, 축구 관련 직업을 다시 찾고 싶습니다. 여자 축구팀이든, 대표팀이든, 남자 축구계에서든 할 수 있어요. 제가 남자축구계에서 위르겐 클롭과 같이 일했던 것 아시죠?"
그는 WK리그 감독이 될 수만 있다면 팀을 금방 성장시킬 수 있다는 자부심도 내비쳤다. WK리그에서 만년 하위권인 창녕WFC에 대한 농담을 하나 전하면서였다.
"창녕은 내내 최하위 근처에 잇지만 우리 대표팀의 이은영처럼 재능 있는 선수들이 있거든요. 저는 가끔 이런 농담을 했어요. '얘들아, 다음 시즌 저는 새로운 감독 창녕 갈 거예요. 다음 시즌 창녕? 챔피언.' 제가 WK리그 팀을 맡는다면 그 팀은 한국에서 가장 체력이 좋은 팀이 될 거고, 모든 선수가 대표팀에서도 체력 최상위권을 차지할 거예요. 이 아이디어를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네요."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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