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기회 쉽게 안 오는데…" 한화 천추의 한으로 남을지도 모른다, 왜 2위 감독에게 책임론 불거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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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이상학 기자]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쉽게 오지 않을 우승 기회를 감독의 고집으로 날려버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에 어쩌면 천추의 한으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한화는 지난달 31일 끝난 한국시리즈에서 LG에 1승4패로 무릎 꿇으며 준우승으로 마쳤다. 정규시즌 1위 LG의 전력이 우위에 있었고, 19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한화라 성공적인 시즌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졌지만 잘 싸웠다’는 표현을 쓰기 어려운 것은 결과보다 아쉬운 과정 때문이다. 김경문 감독의 고집스러운 운영으로 LG와 대등하게 싸워볼 몇 번의 기회를 허무하게 날렸다. 시리즈를 질 순 있어도 이런 식으로 지는 것은 두고두고 회자될 수밖에 없다.
왜 1000승 넘게 하고도 2등 감독 꼬리표를 떼지 못했는지 보여준 가을이었다. 이번 가을야구에서 김경문 감독은 ‘믿음의 야구’로 김서현을 살리기 위해 애썼다.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6회 나온 문동주에게 9회까지 다 맡기며 1점차 승리를 거둔 날, 김경문 감독은 “(김)서현이가 섭섭했을 것이다”며 마무리를 외면한 것이 마음에 쓰이는 듯한 코멘트를 했다. 다음날 4차전 6회 무사 1,2루에서 김서현을 올려 믿음을 보였지만 김영웅에게 동점 스리런 홈런을 맞은 뒤 볼넷 2개를 주고 강판됐다.
그날 결국 역전패하면서 플레이오프를 4경기로 끝낼 기회를 날렸다. 경기 후 김경문 감독은 “감독이 잘못했다”면서도 부담스러운 상황에 김서현을 투입한 것과 관련해 “결과론이다. 5차전에 김서현이 마무리로 나올 것이다”고 말했다. 그래놓고 5차전 경기 전에는 ‘원투펀치’ 코디 폰세, 라이언 와이스 2명으로 끝내겠다고 말을 바꾸며 “결과론으로 선수 하나를 죽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 선수가 힘을 내줘야 우리 한화가 더 큰 목표를 갖고 나아갈 수 있다”며 김서현을 살려야 우승이 가능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차전에서 11-2 대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했지만 폰세, 와이스 모두 소모한 게 뼈아팠다. 4차전 역전패 여파로 넉넉한 점수차에도 와이스를 9회까지 써야 했다. 결국 한국시리즈 1~2차전에서 원투펀치를 쓰지 못하고 2연패로 시작했다. 3차전 승리로 반격의 실마리를 찾았지만 4차전에 김경문 감독은 또 승부처에서 김서현을 투입했다. 3차전에서 1⅔이닝 무실점 막고 승리투수가 된 김서현이었지만 8회 폭투로 3루 주자를 홈에 보냈고, 9회 안타와 몸에 맞는 볼로 주자 2명을 출루시키는 등 내용은 불안불안했다.

그런데 4차전에도 8회 위기 상황에 마무리로 김서현을 썼고, 9회 6실점으로 믿기지 않는 역전패를 당했다. 볼넷 이후 박동원에게 홈런을 맞으며 1점차로 쫓겼을 때 교체 타이밍이었지만 결국 볼넷 하나를 더 주고 나서 교체했다. 경기 후 김경문 감독은 “맞고 나서 이야기하는 건 할 말이 없다. 8회는 잘 막았다”며 결과론이라고 일축했다. 프로는 모든 것이 결과로 평가받는 곳인데 같은 방식의 역전패를 두고 결과론이라고 치부한다면 감독으로서 무책임한 것이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내부 경쟁을 유도하고, 뚝심으로 기둥 선수를 키워내는 김경문 감독은 팀 전력을 끌어올리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 3개 팀에서 11번의 포스트시즌 진출이 이를 증명한다. 통산 1021승에 빛나는 명장이지만 단기전에는 늘 약했다. 두산에서 3번, NC와 한화에서 1번씩 더해 준우승만 5번. 한국시리즈 통산 4승20패(승률 .167)라는 참담한 성적을 냈다.
5번의 한국시리즈 모두 2위로 언더독이긴 했지만 그걸 감안해도 승률이 너무 낮다. 단기전은 그날그날 선수 컨디션에 따라 벤치의 유연하면서도 신속한 판단과 결정이 중요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집착에 가까운 믿음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내일이 없는 단기전에서 다음을 보거나 선수를 살리기 위한 운영으로 정석에서 벗어났다.

단기전만의 문제는 아니다. 7월 중순까지 5.5경기차 1위를 달린 한화는 8월 들어 LG에 선두를 내줬다. 전반기 내내 견고했던 불펜이 8월에 체력적으로 힘이 빠진 기색이 역력했지만 엔트리에 불펜 8명을 고집하며 한 달을 보냈다. 불펜을 8명만 쓰더라도 2군과 순환해서 적절하게 돌려쓰면 과부하를 막을 수 있었지만 김경문 감독은 믿는 선수들만 믿었다. 1군 경험이 풍부한 불펜들이 2군에 꽤 있었지만 부르지 않거나 잠깐 쓰다 말았다. 필승조들이 상황을 가리지 않고 던졌고, 비효율적인 엔트리 운영으로 팀의 강점을 갉아먹었다. 결국 가을야구에서도 불펜이 힘을 쓰지 못하며 무너졌다. 김서현의 부진도 시즌 초중반과 비교해 크게 떨어진 구속, 테일링이 사라진 볼끝 영향이 컸다.
기나긴 암흑기를 보내던 한화를 19년 만에 한국시리즈로 이끈 것은 엄청난 성과다. 시즌 전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이기도 하다. 1위 LG보다 객관적인 전력이 떨어졌으니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라는 결과도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승부처 때마다 반복된 김경문 감독의 악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았고, 고집은 아집으로 판명났다. 한 야구인은 “김경문 감독이 왜 우승을 못했는지 알겠다. 자기 자신의 선택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믿음의 야구를 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믿음의 야구라고말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 문동주를 구원으로 쓸 만큼 불펜투수들을 믿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번 가을야구에서 5경기 5이닝 무실점으로 컨디션이 좋었던 주현상을 이기는 상황에 쓰지 않은 것이 그렇다.
한화의 준우승이 더욱 아쉬운 것은 올해가 우승의 적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한화 출신 야구인은 “이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는다. 폰세, 와이스가 있을 때 우승을 해야 했다. 이런 투수들과 언제 또 할 수 있을지 모른다”며 안타까워했다. 에이스 폰세는 내년에 미국 메이저리그로 돌아갈 게 유력하고, 류현진, 채은성, 최재훈 등 30대 중후반 베테랑들은 나이를 한 살씩 더 먹는다. 젊은 선수들이 성장하며 매년 가을야구에 갈 수 있는 토대를 다졌지만 우승은 베테랑들의 건재와 외국인 선수 복이 따라줘야 한다. 올해는 거의 모든 게 맞아떨어졌지만 마지막 순간 자멸했다. 만년 하위팀을 2위로 올린 감독에게 책임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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