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종오도 없고, 한화도 없는데...역대 최다 메달 눈앞! 한국 사격 이래서 성공했다[파리 비하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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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상경 기자] 말 그대로 '하드캐리'다.
사격은 2024 파리올림픽에 초반 한국 선수단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올렸다. 대회 첫 날 박하준-금지연(10m 공기소총 혼성)이 은메달로 첫 메달을 안겼다. 이튿날엔 여자 10m 공기권총 결선에서 오예진 김예지가 금-은을 합작했다.
만 16세로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 최연소 출전자인 반효진마저 10m 공기소총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금2은2로 2012 런던 대회에서 거둔 역대 최다 메달(금3은2) 기록에 단 1개만을 남겨두고 있다.
사격의 놀라운 선전에 힘입어 한국 선수단도 초반 메달 레이스에서 탄력을 받으면서 이번 대회 예상 금메달(5개)을 일찌감치 달성했다.
멋진 반전의 결과다. 사실 올시즌을 앞두고 사격계 분위기는 밝지 못했다.
'도쿄 악몽'이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했다.
3년 전 사격은 김민정이 25m 권총에서 은메달을 따낸 게 전부였다. 이유가 있었다.
'사격황제' 진종오가 총을 내려놓았고, 2002년부터 연맹 회장사로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해왔던 한화그룹도 철수했다. '위기'라는 단어가 지워지지 않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한국 사격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 있다. 파리올림픽에서 연일 빛나는 총성으로 모두를 놀라게 하고 있다.
위기의식 속에 깨어난 대한사격연맹(회장 신명주)의 절치부심이 결실을 맺었다.
사격연맹은 그동안 본선 점수로만 뽑던 대표팀 선발전을 결선 방식으로 바꿨다. 본선에서 60발을 쏴 합산된 점수로 상위 8명을 가려 결선 10발 후 2발씩 쏴 1명씩 탈락하는 올림픽 방식을 그대로 도입했다. 본선에서 잘 하고도 결선에서 부진했던 그간 국제 대회 사례를 감안, 결선에서 강한 선수를 뽑겠다는 취지였다.
사격계 관계자는 "본선 8위라도 결선에서 잘 하는 선수가 있더라"며 "예선-본선 성적에 걸맞은 포상을 하되, 모두 동등한 조건에서 결선을 치러 동기부여를 극대화 함과 동시에 올림픽과 최대한 똑같은 환경을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첨단 기술을 활용한 최적화 '맞춤 시뮬레이션 전략'도 주효했다.
사격연맹-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관계자들은 대회 현장인 샤토루 사격장을 사전 답사, 경기장 곳곳을 VR(가상현실)에 담아왔다. 경기장 동선 뿐 아니라 화장실 위치까지 VR로 재현해 기기만으로도 마치 샤토루 사격장 안에 들어와 있는 것과 같은 환경을 구현했다.
또한 뇌파 측정을 통해 최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안도 찾았다. 오예진은 금메달을 딴 뒤 "평소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하는데, (VR기기로) 대회장을 실제처럼 볼 수 있어 좋았다. 막상 현장에 오니 낯설지 않았다"고 밝혔다.
물리적 준비가 전부는 아니었다.
사격 대표팀 총사령탑인 장갑석 감독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술을 끊었다. 스스로 "1년 내내 마신다"고 할 정도의 애주가였던 그가 금주를 선언한 건 오롯이 제자들을 제대로 이끌기 위함이었다. '내가 먼저 보여줘야 선수들이 따른다'는 신념 하에 술을 끊은 그는 선수들에게 휴대전화-커피-담배 금지령을 내렸다. 집중력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차단하고 최상의 경기력을 내고자 했던 그의 솔선수범 노력은 이번 대회 성적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빛나는 결실을 맺기까지 과정은 결코 우호적인 환경이 아니었다.
지난해 11월 한화그룹이 회장사에서 물러난 뒤,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이었던 지난달까지 회장 공백기가 있었다. 재정-환경적 어려움 속에서도 사격이 빛나는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이면엔 어른들의 책임감이 있었다.
사격계 관계자는 "십수년 간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해준 한화그룹의 지원도 결코 무시할 순 없다"면서도 "우리 스스로 자립하는 게 중요했다. 불필요한 부분은 최대한 줄이고, 선수들에 대한 지원은 확실하게 해줘 제대로 뛸 수 있도록 하고자 했다. '대한체육회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받고, 노력해서 고칠 부분은 고치자'고 했는데 우리 선수들이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둬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부진과 위기 속에 체념하지 않고 세분화 된 계획과 부단한 노력으로 반전드라마를 쓰고 있는 한국 사격. 오랜 시간 함께해 온 '키다리 아저씨'의 부재가 너무나도 아쉽지만, 이제는 또 다른 발전을 위한 새로운 발걸음을 옮겨야 할 때다.
박상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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